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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일 일요일 자정이 넘은 시간, 마드리드의 메트로폴리타노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일이다.
행복 100퍼센트 상태였던 피르미누는 그 시간이 되어서야 리버풀 라커룸에서 나와, 전 세계 기자단들이 모여있는 믹스드존으로 걸어 들어왔다.
당시 토트넘을 상대로 2-0 승전을 거뒀던 선수의 목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메달이 자랑스레 걸려있었고, 선수의 머리카락은 붉은색으로 스프레이칠이 되어있었다.
그때까지 피르미누는 영국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하면 마치 경기 중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견제를 피해내듯, 이를 잘 넘기는 선수라는 것이 수년간의 누적된 데이터로 증명된 선수였는데, 그날 밤만은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영어실력이 이래서 죄송해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선수가 꺼낸 말이었다. "너무 행복하네요. 여러분들께 그저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피르미누는 이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려 축하파티가 계속되고 있는 팀 버스 쪽으로 가버렸다.
인생 최고의 밤에 대한 소감을 남기려 했던 그때 피르미누의 모습은, 유창하진 않았지만 더없이 피르미누다운 모습이었다.
피르미누는 경기장을 벗어나면 말수도 많지 않고 언론의 관심도 딱히 즐기지 않는, 그런 꽤나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경기장에 들어서면 백만불짜리 미소와 노룩 마무리처럼 본인만의 눈부신 개성을 내뿜으며, 콥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선수다.
하지만 31살의 나이로, 안필드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낸 이 선수는 이제 현행 계약이 만료되는 올 여름 새로운 도전을 찾아나서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긴 작별인사는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며, 선수는 당연히 앞으로 수 주간 가슴 얼얼하고 또 감정적으로도 많이 북받칠 고별사를 듣게 될 것이다.
클롭 감독은 피르미누가 구단의 계약연장 제의를 수락해주길 바랐었지만, 선수가 다른 구단에서는 리버풀에서보다 장기적이고 금전적으로 나은 조건에 계약제의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 또한 언제나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이제 상황은 분명히 정리가 되었고, 클롭 감독 역시 이에 맞춰 팀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피르미누의 퇴단에는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 그리고 팬들의 슬픔이 동반될 것이다. 더군다나 올 시즌 전반기의 활약은 선수가 아직도 보여줄 수 있는게 많이 남아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 실제로 올 시즌 피르미누는 전 대회 도합 26경기에 출전해 (16경기 선발 출전) 9득점을 기록하며, 팀내 득점순위 3위에 이름이 올라있다.
하지만 사실, 이 시점에서의 작별은 선수와 구단 양측 모두에게 일리가 있는 결정이다.
리버풀의 공격진은 지난 14개월간, 디아스와 누녜스, 각포의 영입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그 전을 봐도, 2020년 여름 울브스에서 영입해온 조타가 팀에 남긴 임팩트는 수년간 유럽 전역의 수비수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전통의 '팹 스리 (Fab Three, *비틀즈의 별명을 따 만든 마누라 라인의 애칭)'를 사실상 해체시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8월이 되면, 팀을 대표했던 이 공격 트리오에서 살라만이 안필드에 남아있게 된다.
피르미누는 올 시즌이 끝나고도 구단에 잔류한다면, 본인의 출전기회는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거라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피르미누에게는 여전히 경기를 꾸준히 뛰고자하는 마음이 있으며, FA 신분으로 팀을 떠나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는 두둑한 주급이 선수를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다.
물론 리버풀에 잔류했더라도 유용한 옵션으로 활약했을 선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월 첫째 주가 되면 32살이 되고 또 근 2시즌간 근육부상로 인한 전력이탈의 빈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선수에게, 선수 측이 거절하기 힘든 그런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클롭 감독 체제 하에서 리버풀이 이뤄낸 모든 것. 이 모든 것의 일등공신이었던 선수가 머지않은 시점 퇴단한다는 것은 리버풀에 불고있는 변화의 바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다시 말해, 근위병 교대식에 이제 속도가 붙고있다는 것이다.
독일 구단 호펜하임 측에 29m파운드를 지불했었던 2015년 여름, 당시의 투자로 구단이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353경기 출장, 107득점, 71도움의 기록조차도 선수의 어마무시한 기여도를 제대로 대변해주지는 못한다.
피르미누가 구단에 입단했던 그때,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고있었던 로저스 감독은 선수에게 큰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로저스 감독은 공격진의 축을 맡아줄 선수로 아스톤 빌라의 벤테케를 원했었고, 두 선수를 하나의 이적시장에서 모두 데려오는 결정은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피르미누의 영입을 강력히 추진했던 것은 선수영입부서의 핵심인사들, 마이클 에드워즈 (*스포르팅 디렉터), 데이브 팔로우즈 (*영입팀장), 배리 헌터 (*수석 스카우터)였다.
하지만 10월 리버풀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클롭 감독은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있으면서 선수를 잘 알고있었고, 그런만큼 선수의 존재가치를 따로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구단 부임 후 전임 감독에게서 물려받은 이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정확하게 알고있었던 클롭 감독이었다.
"리버풀이 그를 영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 생각했어요. '아니, 리버풀이 이걸?'." 클롭 감독이 말한 내용이다. "당시 리버풀은 100퍼센트 폼이 아니었던 팀이었고, 리버풀보다 많은 이적료를 제의할 수 있었던 구단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그런 생각을 한 거에요, '리버풀, 진짜 좋은 영입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던 로저스 감독 체제 마지막 나날, 윙백으로까지 기용되며 제 길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던 피르미누는 클롭 감독의 손 아래서 펄스나인 역할을 맡으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클롭 감독은 선수가 보여준 에너지와 프로의식을 치하하며 그를 "팀의 엔진"이라고까지 표현했었는데, 그만큼 피르미누는 쉼없이 뛰는 감독 특유의 축구스타일을 상징했던 선수였다.
기록상 피르미누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2017-18시즌으로, 이 기간 선수는 전 대회 도합 26득점, 16도움을 올렸다. 20득점 이상을 기록했던 시즌은 해당 시즌이 선수의 프로경력에서 유일한데, 득점이 많지 않다는 부분은 선수가 마땅히 받아야할 더 좋은 평가를 좀처럼 받지 못했던 요인이었다.
하지만 피르미누에 대한 구단 내부의 평가는 그야말로 최고다. 훌륭한 스킬셋과 이타적인 천성을 지닌 완벽한 팀 플레이어라는 내용이다.
전성기 시절, 피르미누는 라인과 라인 사이의 포켓 공간을 찾아내는데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그때의 피르미누는 리버풀 입장에서는 좋은 패스 시야와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발기술과 재간을 갖춘 창의적인 공격수이면서, 상대 팀의 입장에서는 상대 선수를 괴롭히겠다는 일념으로 소유권을 내주게끔 이들을 달달 볶았던 악몽같은 선수였다.
2019년 12월 플라멩구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결승득점을 기록했던 클럽 월드컵에서도,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피르미누는 언제나 팀의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바비 [Bobby, *피르미누 애칭]가 현역에서 은퇴를 하면, 전 '바비가 펄스나인 포지션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고 사람들이 책을 쓸거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시즌 초반,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상대로 5-0 대승을 거두고, 클롭 감독이 했던 말이다.
"바비가 그 포지션을 창조해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선수 뛰는 걸 보면 한번씩 정말 그런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바비는 우리가 본인의 플레이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저는 이런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 선수의 상황은 달라졌다. 클롭 감독이 리버풀 지휘봉을 잡고 진행한 풀시즌 5시즌간, 리그에서 고작 10경기에만 결장했었던 피르미누는 30줄에 들어서면서 전보다 많은 부상을 당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선수의 활동량에는 큰 타격이 있었고, 새로운 얼굴들이 속속들이 구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난 시즌, 피르미누는 사타구니 부상으로 카라바오컵 결승전 출전기회를 아예 놓쳤고, 이후 진행된 FA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후반 막바지 카메오로만 얼굴을 비췄다. 올 시즌에도 종아리 부상, 다른 공격자원들의 좋은 폼 등 여러 이유 때문에 11월 이후로는 선발로 출장한 경기가 없는 상황이다.
분명 피르미누에게 이 결정은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내린 결정일 것이다. 머지사이드는 선수 본인에게도 그렇지만, 아내 라리사, 그리고 세 딸아이에게 오랫동안 집같은 공간이었으며, 리버풀에서 피르미누는 팀동료인 알리송과 파비뉴를 비롯해 다른 동향인들과 굉장히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작별인사는 분명 쉽지 않겠지만, '바비'라는 애정어린 별명을 가진 이 선수는 귀청이 떨어질만큼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와 함께 구단을 떠나게 될 것이다.
지난 8년간, 피르미누는 위대한 선수들이 즐비한 구단 레전드 반열에 본인의 이름을 새겼고, 그런 선수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있었다.
떠나가는 선수의 뒷모습에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추억들이 선수의 그림자를 이룰 것이다.
호베르투 피르미누. 명실상부한 리버풀 레전드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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