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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대표팀이 손쉬운 승리를 거뒀던 이날 저녁, 보다 주목할만한 순간은 선수들이 웸블리 잔디를 벗어나고 관중들 대부분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뒤에 등장했다. 터치라인 밖에서, 그리고 텔레비전 방송사 카메라들과 집에서 이를 보고있는 시청자들 눈앞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드필더가 다른 시대를 풍미할 미드필더에게 성화를 건네주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이었다.
사실 경기가 끝나고 진행되는 텔레비전 방영 인터뷰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는 힘들다. 인터뷰를 하는 선수들은 거진 모두가 승점 3점을 얻어 행복해하고, 팀 전체의 활약에 자부심을 느끼며, 다음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말을 한다. 질문도 단골멘트, 대답도 단골멘트다. 하지만 주드 벨링엄이 스티븐 제라드를 만났을 때는, 분명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이러한 느낌은 특히 제라드와 벨링엄이 서로를 칭찬하며 대화를 이어갈 때 더했는데, 이때 제라드는 그동안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본인의 후계자로 분류되는 선수들 가운데 갖고 있는 재능의 그릇이 가장 큰 듯해 보이는 벨링엄에게 특별한 칭찬의 말을 전했다.
둘의 만남이 이번 이야기의 메인플롯이라면, 서브플롯은 당연히, 리버풀에는 위르겐 클롭 감독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구단의 중원, 그리고 잉글랜드 대표팀의 중원에서 벨링엄이 제라드의 장기적 후계자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선수는 변화의 여름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리버풀은 그런 선수의 영입을 간절히 원하는 구단으로 현재 알려져있다.
올 여름 유수의 구단들 중 본인의 행선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거나 마찬가지인 벨링엄을 리버풀이 원하는 이유 한 가지는 바로 선수가 'new 제라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팀의 심장부를 책임지는 선수이자, 구단의 구심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중원의 전사같은 그런 선수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유년시절 제라드를 우상으로 생각했던 선수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어떤 선수에게든 매력요소로 작용할 만 하다.
"저 지금 긴장하고 있어요." 채널 4 (Channel 4, 영국 방송국)와의 인터뷰 중 제라드가 본인의 롤모델 중 한 명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제라드 옆에 서있었던 벨링엄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당연하죠. 팀내에서 스티비가 해냈던 것들, 그러니까 팀을 캐리했던 모습들, 혼자 힘으로도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모습들을 보면, 스티비는 미드필더로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말해왔지만 전 선배님 그리고 선배님의 플레이를 우러러봐왔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이렇게 서있는게 정말 기쁘네요."
그리고 두 인물 사이의 애정전선은 분명, 화살표가 양방향이었다. "들어봐," 벨링엄의 말을 듣고, 제라드가 말을 꺼냈다. "여기서 딱 말을 해주자면, 넌 내가 네 나이였을 때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그리고 넌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이건 확실하지."
그러고서, 다른 인터뷰어에게 10대의 제라드보다 10대의 벨링엄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이 들어오자, 제라드는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음, 일단 19살의 저보다 몸이 더 좋아요. 전 22, 23살이 되기 전까지 이 정도의 힘과 근력이 절대 없었거든요."
"볼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엇을 시도하는데 있어, 그때의 저보다 자신감을 많이 갖고 있고요. 겸손 떨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게 아니에요, 이건 사실입니다. 전 제가 19살이었을 때보다 지금의 주드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제 말을 오해하시면 안되는게, 선수 시절 저는 제가 원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었어요. 주드 또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계속 해나간다면, 자연스레 본인이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정말 멋진 모습이긴 하지만요."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잠시 제쳐두고, 하던대로 계속 잘 뛰어주기만 한다면, 모든 것들은 저절로 잘 흘러갈 겁니다." 잉글랜드 축구계가 낳은 최정상급 미드필더가 직접 건넨 굉장한 찬사다. 그리고 이러한 찬사에는 통계적인 근거도 있는데, 벨링엄 나이에 제라드는 대표팀 경험이 없었다. 그에 반해 벨링엄은 이미 24번의 A매치 출전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0대 때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이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웨인 루니가 유일하다.
한편 벨링엄 나이 때, 제라드는 프리미어리그 32경기에 출전해 1득점, 2도움을 기록했었다. 반면 분데스리가에서 총 85경기에 출전해 8득점, 15도움을 올리고 있는 지금의 벨링엄이다.
축구계에 보장되는 건 없지만, 벨링엄이 세계 축구계 젊은 미드필더 중 으뜸가는 안전자산이라 널리 인정받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잉글랜드가 수월한 승리를 거뒀던 이 경기에서도, 벨링엄은 신체적 강점과 기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중원을 지배했다. 벨링엄이 환상적인 알까기 동작에 이어 짤막하게 탈압박 움직임을 선보였을 때는 해리 케인이 선제골을 기록했을 때 만큼이나 많은 탄성들이 홈 관중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리버풀 팬들은 틀림없이 제라드의 개입이 선수 영입전에서 차이를 가져와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바람은 제라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벨링엄 영입전은 점점 격화되고 있으며, 리버풀은 맨시티, 레알, 맨유 같은 팀들을 제치고 선수를 품으려면 그야말로 모든 수를 총동원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 이 과정을 돌이켜봤을 때 어쩌면 이날 있었던 제라드와 벨링엄, 둘의 만남이 과정 상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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