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잠실야구장 보안업체 신화안전시스템의 이승우 보안실장이 무전을 통해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
'언성 히어로(Unsung Hero).'
돋보이진 않지만 팀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선수들을 일컫는다.
공 하나에 모두가 울고 웃는 잠실야구장에도 ‘언성 히어로’가 있다.
그라운드를 휘감는 선수들의 땀과 팬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흔들림 없이 냉철한 멘탈을 유지해야 하는 안전 요원들이다.
누구보다 역설적인 시간을 보내는 ‘잠실 지킴이’들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신화안전시스템 이승우(47) 보안실장은 벌써 15년째 널찍한 야구장을 누비고 있다.
◆흥을 식혀야 하는 사람들
그의 하루는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다.
오후 6시30분 경기 기준 오후 1시에 출근해 기본 사무를 본 후, 홈팀과의 사전 미팅으로 현장 업무가 시작된다.
회의 내용 전달, 아르바이트 대상 CS(고객만족) 교육, 포지션별 교육 및 배치를 마치면 관중 입장을 신호로 본격 업무가 시작된다.
이 실장은 “과거에는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한 관중 통제가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안내 요원 서포트도 병행한다”며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업무를 소개했다.
또 “복장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완벽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이제 스포티한 의상을 입는다.
방검 조끼, 가스건, 삼단봉 등 위협감을 줄 수 있는 착장들도 모두 없앴다”고 설명했다.
다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보안 요원들은 경기장 모두가 신을 낼 때, 그들을 가라앉혀야 한다.
홀연히 찾아오는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 때문이다.
이 실장은 “우리는 즐기러 오시는 분들의 흥을 식혀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말 중 90%가 ‘안 됩니다’와 같은 부정적인 표현들이다.
그렇다 보니 요원들에게 반감을 가지시는 분들도 많다”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이승우 보안실장이 관중석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물론 대중의 인식은 체감 가능할 정도로 개선됐다.
응원 및 관람 문화도 성숙해져 ‘무법지대’ 같던 과거 야구장보다는 근무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선이다.
이 실장은 “진상 관중들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저희 말에 수긍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시는 분들이 있다”는 고충과 함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최근 한 남성 관중이 자신의 손주가 자리가 좁아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관중석 옆 계단에 걸터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한 요원이 “관중 통행과 시야 확보에 문제가 되고 안전사고 위험성이 있으니 자리로 돌아가달라”고 해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말꼬리를 잡았다.
도리어 “관중을 어떻게 보길래 손님에게 이런 요구를 하느냐”는 반박과 함께 욕설, 신체 접촉까지 서슴지 않으며 위협을 가했다.
이 실장의 중재 아래 결국 사과를 받아냈지만, 이처럼 ‘손님이 왕’이라는 편협된 사고로 욕설과 폭력을 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객도 문제다.
알코올 도수 5도 이상의 주류는 반입 불가임에도 최근 잠실 외야석에서 소주를 몰래 가져와 마시다가 적발된 관중이 있었다.
요원들이 폐기 처분을 위해 남은 술을 가져가자 그는 앙심을 품고 입에 물을 담아 요원 얼굴에 뿌리는 충격적인 행동을 했다.
이 실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에 인계하려 하자 근무자에게 헤드록까지 걸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심지어 경찰서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며 발뺌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봤던 목격자 중 진술서를 적어준 한 관중 덕에 다행히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 실장은 이런 억울한 사유로 경찰서를 오간 적을 손에 꼽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가 꺼낸 몇 년 전의 에피소드도 충격이었다.
과한 음주로 인사불성이 된 한 여성 팬이 화장실 앞에서 온몸에 오물을 묻힌 채 쓰러져 있었다.
차마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을 맡길 수 없던 그는 직접 장갑을 낀 채 수건으로 예민한 부위를 피해 최대한 이를 닦아냈다.
그리고 취객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은 끝에 무사 귀가를 시킬 수 있었다.
어머니 또한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며칠 뒤 돌아온 것은 경찰서로부터의 출석 요구 전화였다.
술에서 깬 취객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대뜸 성추행 신고를 한 것이었다.
추후 신고 사실을 인지한 어머니가 일을 매조지으며 이 실장은 억울한 일을 피했지만 이 또한 뇌리에 깊이 박힌 기억 중 하나가 됐다.
이 실장은 “저희 모두 이 일을 한다는 이유로 듣지 않아도 될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당하도 되지 않을 일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줄여보고자 최근 자주 보이는 ‘저희 직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와 같은 문구가 적힌 목걸이를 근무자들에게 차고 다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일지 모르지만 ‘고생 많으시다’며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확 늘었다.
이 실장은 “그 순간들 덕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나”며 웃었다.
 | 이승우 보안실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나누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
◆돋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안전을 위해 힘쓰는 보안 요원들의 업무는 스포츠가 펼쳐지는 공간에서 환영받는 일은 아니다.
화려하고 즐거운 일로 관중을 모아야 하는 구단, 경영진, 협회의 입장과 항상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최근 이벤트들은 더 즐겁고 자극적인 것들을 찾게 된다.
우리는 안정성을 검토해 반대 의견을 내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
만약 사고가 나면 책임은 크지만 반대로 사고 없이 끝난다고 해서 크게 티가 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사실 많은 후배들이 갈수록 동기부여될 거리를 찾기 힘든 분위기가 돼간다.
일종의 음지에서 행해지는 일이라 일선에서 배제된다는 느낌도 지우기 힘들 것이다”며 “일이라는 게 돈 보다도 일에 대한 비전도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저와 후배들이 하는 이 업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자리에 나섰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서 말했듯 팬들의 안전 의식과 관람 문화가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
사건·사고들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준 것도 사실이다.
우리 보안 요원들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 큰 관심을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건넸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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