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박진업 기자]은퇴를 선언한 배구 여제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은퇴 경기를 통합 우승으로 써내려간 김연경의 드라마를 사진과 함께 따라가 본다.

운명의 5차전의 5세트. 투트쿠의 퀵오픈이 상대 수비를 맞고 코트 밖으로 날아가던 순간,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실패의 악몽 같던 기억들은 저 멀리 함께 날아갔다.
김연경은 특유의 포효와 함께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투트쿠를 끌어안았다.

꽉 끌어안은 두 사람을 향해 모든 선수들도 달려와 하나가 되었다.

김연경은 펑펑 눈물을 흘리는 ‘절친’ 김수지를 한참을 꼭 끌어안았다.
29년을 함께 한 두 친구의 소원 풀이 순간이었다.

헹가래를 칠 순서가 아니었지만 기쁜 마음이 앞선 선수들은 갑자기 아본단자 감독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김연경도 뒤이어 헹가래를 쳤다.
선수들과 취재진이 뒤엉킨 혼돈의 코트 속에 김연경은 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준우승 팀으로 시상대에 오른 정관장은 은퇴하는 김연경의 앞날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따로 준비해와 펼쳐보이는 품격을 보여주었다.

품격 넘치는 준우승 팀 정관장이 비워준 시상대를 우승팀 흥국생명이 채웠다.
우승 트로피는 김연경에게 맡겨졌다.
언제나 팀의 기둥이던 김연경은 이번에도 시상대 한가운데 우뚝 서서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렸다.
김연경이 높이 들어올린 트로피는 선수들의 환호를 불렀고 동시에 팬들의 환호가 되어 체육관 가득 울렸다.

기자단 투표 만장 일치의 결과가 보여주듯 김연경은 ‘당연하게도’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되었다.

시상이 마무리 된 뒤 취재진은 아본단자 감독과 김연경에게 다시 한 번 헹가래를 요청했다.
우승 확정 직후 ‘혼돈’의 코트에서 갑자기 진행된 탓에 ‘그림’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아본단자 감독은 손을 저으며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떴다.
김연경 역시 “아까 했는데요!”라며 사양의 뜻을 내비쳤다.
머뭇거리는 김연경. 하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이번에는 동료 선수들이 도왔다.
주변의 선수들이 헹가래의 움직임을 보였고 실제 실행에 나선 건 선수들의 안전을 염려한 남자 코칭스태프들의 몫이었다.
하늘로 날아 오르고, 날아 오르고, 또 오르고... 이렇게 드라마틱 하게 은퇴를 하게 되는 선수가 있을까 싶은 김연경의 헹가래였다.

이후 진행된 순서에서 김연경은 자신에게 건네진 마이크를 통해 자신이 떠난 흥국생명을 계속 응원해달라는 당부를 팬들에게 전했다.

여러 선수들의 소감이 차례대로 이어지고 김연경을 향한 취재진의 요청이 다시 한 번 이어졌다.
단독으로 트로피를 든 모습을 부탁했던 것. 평소 같으면 ‘이미 충분하다’며 요청을 피했을 지 모를 김연경은 이번에도 ‘날이 날이니 만큼’ 다시 한 번 응했다.
물론 그냥은 아니었다.
김연경은 MVP 트로피과 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면서도 누구에나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자꾸 되뇌는 말이 있었다.
“나 착하다! 착하다!” 그 말에 취재진 역시 고마워하며 크게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이렇게 길게 기념촬영이 이어진 적은 없었다.
별도의 룸에서 진행된 취재기자 인터뷰까지 마치고 코트로 다시 돌아온 김연경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몰려든 동료 선수들, 선수의 가족들, 구단의 직원들까지 한 명 한 명 기념촬영을 했다.
너무 길어지는 탓에 장내 안나운서가 정리를 해야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을 위한 정성스런 기념촬영이 끝나고 김연경에겐 자신을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김연경은 트로피 둘을 챙겨 시상대 위에 올라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신을 위한 기념촬영이 끝난 뒤 마지막은 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김연경은 휴대전화를 챙겨 팬들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었다.
이쪽을 배경으로 찍었다면 또 저쪽이 서운할까 자리를 옮겨 팬들을 함께 사진에 담았다.

팬들과의 사진까지 남긴 김연경은 30년 가까이 정든 코트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 역시 팬과 함께 했다.
김연경은 정말 긴 시간 관중석을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사방을 모두 돌며 팬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사랑하는 슈퍼 스타가 드라마 같은 우승을 안겨주고 은퇴 하던 날, 김연경은 하나 하나 마주친 그 손을 통해 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새겨주었다.
다시는 쓰지 못할 ‘배구 여제’ 김연경과 그 슈퍼 스타를 너무도 사랑하는 팬들의 드라마 같은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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