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공격은 하지 않고 후위에서 수비만 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팀 내에서 리시브와 디그를 가장 잘 해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서브는 주로 리베로가 아닌 아웃사이드 히터들에게 때리는 게 정석이다.
아무래도 리베로보다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리시브 능력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브를 받는 아웃사이드 히터가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공격 옵션을 하나 지울 수 있어 블로커들은 한결 더 편하게 상대 공격을 대비할 수 있다.
자신에게 서브가 잘 날아오지 않을 때 리베로가 노는 것은 아니다.
공격력에 비해 리시브 능력이 떨어지는 아웃사이드 히터에게 날아오는 플로터 서브를 대신 커버해주는 등 리시브 범위를 넓게 잡고 리시브 라인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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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팀이 전력 분석을 통해 리시브 라인에 서는 아웃사이드 히터들보다 리베로의 리시브 능력이 더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 프로배구의 전설적인 리베로 출신으로, 현재는 IBK기업은행 배구단 프런트로 변신한 남지연 차장은 “예전에 상대가 나에게 목적타 서브를 날려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50%가 훌쩍 넘는 완벽한 리시브로 되갚아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리베로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가 있다.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이 정관장의 리베로 이슈로 요동치고 있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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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달 29일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 도중 등 통증을 느껴 코트에서 빠졌다.
노란의 부재 시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것은 세컨드 리베로인 최효서다.
그러나 최효서는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도 노란을 대신해 들어갔다가 상대의 목적타 서브에 크게 흔들렸다.
특히 김다인의 플로터 서브를 관중석으로 하나 날린 뒤 이어 들어오는 짧게 뚝 떨어지는 서브에 농락을 당하며 연속 서브득점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에도 최효서의 리시브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고희진 감독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아웃사이드 히터인 박혜민에게 리베로 조끼를 입힌 것이다.
이는 곧 부상으로 교체된 노란과 최효서를 경기 끝까지 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 감독의 모험적인 ‘고육지책’은 성공했다.
박혜민이 리시브에서는 그리 좋은 효율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그럭저럭 버텨내면서 15개의 디그를 걷어내며 ‘깜짝 리베로’ 변신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플레이오프 3차전 승리 후 고 감독도 “박혜민 덕분에 이겨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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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감독의 선택은 최효서와 박혜민을 동시에 기용하는 ‘더블 리베로’ 시스템이었다.
최효서를 리시브 상황에 쓰고, 박혜민은 디그 상황에 코트에 섰다.
경기 전 고 감독은 “(최)효서의 멘탈이 많이 회복됐다.
분명 기량은 있는 선수다.
좋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선수 본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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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서버들의 서브는 최효서에게 집중됐다.
1세트 21개 서브 중 절반이 넘는 11개가 최효서에게 향했다.
1세트 최효서의 리시브 효율은 18.18%(3/11, 1개 범실)에 불과했다.
2세트에도 세트 중후반 코트를 떠났음에도 팀에서 가장 많은 9개의 서브를 받아내야 했다.
특히 18-17로 앞서던 상황에서 흥국생명의 원포인트 서버 최은지의 서브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해 동점을 허용했고, 이후에도 최은지의 서브에 계속 흔들리자 고 감독은 결국 리시브 상황에서 최효서를 빼고 박혜민을 코트에 넣어야 했다.
그때 이후 최효서는 이날 경기에서 더 이상 중용되지 못했다.
3세트에도 박해민이 리시브, 디그 상황을 거의 다 커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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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확과 범실 사이에 있는 15개의 리시브의 순도다.
정확으로는 집계되지 않아도 세터가 오픈이나 퀵오픈으로 연결시킬 수 있게 올려야 하지만, 15개 중 상당수는 제대로된 공격을 만들 수도 없게 크게 빗나간 리시브였거나 상대 코트로 바로 넘어갔다.
이는 곧 흥국생명의 손쉬운 득점으로 연결됐다.
결국 ‘리베로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한 정관장은 1차전을 세트 스코어 0-3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1,2세트에서 모두 세트 중후반까지는 접전을 치렀음을 감안하면 조금 더 정확하고 세밀한 리시브가 나왔다면 경기 결과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결국 모두 내주고 말았고 3세트는 힘없이 밀리며 셧아웃 패배를 받아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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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감독에게 2차전부터의 리베로 운영을 묻자 “내일 연습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
최효서의 심리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라고 답했다.
정관장의 2차전 리베로 운영은 어떻게 될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주전 리베로인 노란이 부상에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란이 뛰지 못할 경우에는 복잡해진다.
최효서가 플레이오프 3차전과 챔프전 1차전에서의 실패를 극복하고 멘탈을 회복해 돌아와 나아진 리시브를 보여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리베로 알바’를 하고 있는 박혜민에게 리시브와 디그를 모두 맡기는 것도 부담스럽다.
박혜민의 리시브 능력이 아웃사이드 히터로서는 준수한 편이지, 전업 리베로를 맡길 정도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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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탑으로는 처음 챔프전에 올랐지만, ‘리베로 리스크’에다 세터 염혜선, 외국인 선수 부키리치, 미들 블로커 박은진도 성치 않은 몸으로 코트에 서고 있다.
이 난국을 고 감독이 어떻게 타개하며 13년 만에 챔프전에 오른 정관장의 반격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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