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 기자] 초구가 시속 150㎞로 날아들었다.
3점을 뒤지고 있는 데다 무사 1,2루 기회. ‘속구’를 머릿속에 그린 듯 힘차게 배트를 돌렸지만, 배트 스피드가 구속을 따라잡지 못했다.
살짝 과장하면, 포수 미트에 볼이 들어간 뒤 스윙하는 것처럼 보였다.
타자 반응이 늦다는 것을 눈치챈 상대 배터리는 2구째도 속구를 선택했다.
타자는 ‘움찔’했지만, 배트를 내밀지 못했다.
타이밍은 여전히 속구. ‘반드시 쳐내겠다’는 의지가 살짝 엿보였다.
시범경기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유인구 따위를 던질 이유가 없다.
배터리는 다시 속구를 선택.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내밀어 공을 맞히는 데 성공했지만, 배트는 두동강 났다.
몸쪽으로 잘 제구된 시속 150㎞짜리 속구는 100% 컨디션일 대도 쉽게 공략하기 어렵다.

무사 1,2루 기회는 2사 3루로 허무하게 바뀌었다.
‘팀 전력의 절반’으로 불리는 중심타자가 같은 구속에 같은 구종 세 개를 잇달아 보고도 병살타를 쳤으니, ‘신입 외국인 타자’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을 터. 더구나 상대 외국인 타자는 바로 전이닝 때 KBO리그 데뷔 홈런(비공식)을 쏘아 올렸다.
속구 3개를 이어 던진 배터리는 신입 외국인 좌타자에게 변화구 세 개를 연거푸 던졌다.
세 개 모두 힘차게 배트를 돌렸지만, 공과 만나는 점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화이트데이인 14일 잠실구장 1회말 풍경이다.
KIA 1선발 제임스 네일을 상대한 두산 양의지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배트가 두동강 난 것도, 속구에 반응속도가 더딘 것도 이해돼서다.
풀타임 경험이 많은 선수들은 3월 중순이면 몸이 가장 무거운 시기다.
개막을 앞두고 훈련량을 늘리는 게 ‘루틴’이기 때문이다.
체력이든 타격이든 훈련량 자체를 늘려 몸을 피로하게 만든다.
땅을 다지듯 힘을 비축해야 기나긴 정규시즌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몸은 피곤한데 실전감각은 절반도 안 되는 상태면 빠른 공이든 변화구든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슬로 스타터는 이 시기에 시속 150㎞짜리 속구를 통타하는 건 10% 확률도 안된다.

그런데 양의지는 비록 시범경기여도 ‘젊은 투수를 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포수다.
마스크를 쓰고 앉아 1회초에만 안타 3개로 3점을 내줬다.
3안타 중 두 개는 2루타, 홈런 등 장타였다.
선발 경쟁 중인 최승용의 기를 살려주려면, 이어진 공격에서 만회해야 한다.
테이블세터가 무사 1,2루로 밥상까지 깔아줬으니, 진루타라도 만들어야 체면이 선다.
초구를 노렸는데 크게 헛스윙했으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2구째를 지켜보며 타이밍 계산을 했지만, 역시 ‘몸스피드’가 생각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니 손목을 쓸 수밖에 없고, 손잡이 쪽에 맞아 배트가 두동강 났다.
1루로 달려가는 양의지의 뒷모습에 ‘깊은 자괴감’이 묻어났다.
결과를 떠나 이 장면 하나로 두산은 계획대로 시즌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하던 대로 컨디셔닝하고 있다.
시범경기가 재미있는 건 시즌 준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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