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세영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더할 나위 없는 피날레였다.
한국 배드민턴의 보물, 안세영(21·삼성생명)이 자신의 2번째 아시안게임에서 일을 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 개인전 단식을 휩쓸며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두 금메달 모두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29년 만에 나온 역사적인 발자취다.
적진 한복판에서 거행한 9일짜리 성대한 대관식이었다.
지난달 25일 ‘결전의 땅’을 밟아 적응 훈련을 시작한 그는 29일부터 공식 경기를 뛰었다.
9일 동안 총 8경기를 치렀다.
단 한 경기도 지지 않았다.
16세트를 얻어내며 단 2세트만 잃었을 뿐이다.
 | 안세영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그는 이미 ‘셔틀콕 여제’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뚜껑이 열린 본대회에서 예상대로 그 위용을 뽐냈다.
종목마다 최강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안세영은 그중에서도 가장 짙은 아우라를 가졌다.
상대를 압살하는 파괴적인 경기력을 보고 있으면, 누굴 만나도 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피날레를 알린 여자 단식 결승전이 단연 백미였다.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2위)가 단체전 도중 찾아온 부상으로 대회를 아예 이탈하면서 유일한 경쟁자가 된 천위페이(중국·3위)가 그의 마지막 상대였다.
‘라이벌전’다운 경기가 결승전을 수놓았다.
1세트부터 피 튀겼다.
그때 변수가 발생했다.
18-16으로 쫓기던 안세영이 또 하나의 점수를 허락했다.
보다 큰 문제가 발생했다.
안세영이 오른 무릎을 잡고 주저앉았다.
며칠 전 믹스트존에서 “오른 무릎이 조금 안 좋은데 큰 문제는 없다”며 팬들을 안심시켰던 그의 리스크가 중요한 순간에 터진 것이었다.
일그러진 표정의 안세영에게 응급처치가 이뤄졌다.
임시방편이었다.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안세영은 일어섰다.
그러고는 쫓기던 1세트를 기어코 승리로 매조지었다.
기쁨도 잠시, 다시 주저앉아 테이핑을 새로 둘렀다.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파스 연기가 그의 무릎을 가렸다.
 | | 안세영의 오른쪽 무릎에 둘러진 수많은 테이핑과 붕대들. 사진=뉴시스 |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천위페이는 움직임이 둔해진 안세영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결국 2세트를 잃고 위기가 찾아왔다.
이대로 안세영의 아시안게임 2관왕 도전이 좌절되나 싶었다.
기적이 찾아왔다.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코트에 들어선 그는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수놓았다.
초반부터 큰 리드를 잡으며 천위페이를 압박했다.
당황한 상대가 흔들렸다.
안세영의 수비를 좀처럼 뚫지 못했고, 기본적인 범실도 쏟아졌다.
안세영이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그러고는 무려 21-8, 엄청난 점수 차로 3세트 그리고 경기를 닫아버렸다.
 | 안세영이 우승을 확정 짓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가슴팍에 새겨진 태극마크를 움켜쥐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절뚝거리는 다리와 함께 현지를 찾아준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최고의 명승부, 감동의 명장면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통증 이후 50분 남짓을 아픈 다리와 함께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안세영은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꼿꼿이 경기를 해내고 싶었다”며 “아무 생각 없이 셔틀콕만을 따라 뛰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투혼, 감동적인 명승부였다.
‘셔틀콕 여제’라는 영광의 타이틀, 안세영은 그걸 가질 자격이 충분했다.
항저우=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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