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과 별개로 민사상 손배소 가능성도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배상 책임도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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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북 의성군 산림이 일주일간 지속된 산불로 폐허가 돼 있다. 의성=연합뉴스 |
영남권을 덮친 대형 산불의 원인이 현재까지 개인 과실에 의한 ‘실화(失火)’로 추정되면서, 최초 화재 원인 제공자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정도에 관심이 쏠린다.
실화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현행 산림보호법이 규정하는 가운데, 형사적 처벌 외에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잇따라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산불 장기화로 인적·물적 피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청구 주체가 정부·지자체 혹은 이재민을 포함한 민간인까지 다양해질 수도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산불을 발생시킨 실화자들은 불이 번지지 않게 주의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
경북 의성군 산불은 묘지를 정리하던 성묘객의 실수, 경남 산청군 산불은 잡초 제거 중 예초기에서 튄 불씨 그리고 울산 울주군 산불은 용접 작업 중 튄 불씨 등이 현재까지 원인으로 추정된다.
법조계는 산림과 농지, 주택, 상가 등 재산상 피해는 물론이고 사망·부상 등 인명 피해, 이재민의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등도 배상 범위에 포함한다.
이와 함께 소방 인력과 헬기 등 진화 작업 비용과 기타 공공 지원의 투입 비용도 실화자에게 청구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산불로 전소된 일부 문화재 등이 관련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보험사의 실화자를 상대로 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도 있다.
실화자에게 각 주체가 손배해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피해를 본 개인 등이 받을 배상금은 미미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종 배상액은 법원의 감정·심리로 결정되는데, 민법이 배상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배상액 경감을 청구할 수 있다며 정하고,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도 피해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실화자의 노력이나 배상 의무자와 피해자의 경제 상태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의성군 산불 실화 혐의를 받는 성묘객은 직접 119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불 확산에 영향을 준 강풍 등의 자연 현상도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
안준형 변호사는 28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법리적으로는 산불 책임 전부를 실화자 개인에게 물을 수는 있지만, 산불이라는 것은 계속 번져나가는 것이고 그런 것들에 대한 인과관계를 넓게 인정해 개인에게 손해를 다 묻는 게 합당한가”라고 말했다.
진행자의 ‘당국의 산불 대응이 늦거나 효율적이지 못해 확 번졌다면 당국의 책임도 있나’라는 질문에는 “산림청이나 지자체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산불 원인을 제공했어도 결과론적으로 모든 피해를 다 부담할 수 없을 거라는 취지 분석은 2019년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과 맞닿아 있다.
당시 전신주에서 튄 불꽃으로 대형 산불이 일어났을 때도 한국전력공사의 배상 책임은 제한적이었는데, 법원은 한전의 전신주 관리 부실 등으로 산불이 발생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강풍 등 자연력과 지형이 불길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쳐 모든 배상 청구액을 부담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정부와 지자체는 한전에 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을 마친 현재까지 27억원의 배상 책임만을 인정받았다.
이재민은 피해 감정액의 60%인 87억원과 지연손해금만이 인정된 터다.
이처럼 형량 등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안 변호사는 올해 초 대형 산불이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실화는 최대 징역 3년 이하로 처벌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 대신에 캘리포니아주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존재해 민사상 책임을 더 크게 부과할 수도 있다.
영남권 산불의 정확한 원인과 피해 규모는 모든 진화 작업이 끝난 후 관계 당국의 합동 감식을 통해 밝혀진다.
평균 진화율이 85%에 이른 28일 소방 당국은 사실상 이날을 진화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보고 장비와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진압을 위한 총력전을 펼칠 방침이다.
아울러 이번 산불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산불 영향 구역에 포함된 경북 북부의 면적은 4만5000ha로 파악돼 진화가 완료되면 피해 면적이 역대 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8일 오전 6시 기준 산불사태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28명, 중상 9명, 경상 28명 등 65명으로 집계됐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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