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만 해도 고상한 드뮤어(Demure)와 올드머니(Old money)가 대세였는데, 올해는 강렬한 여전사를 연상케하는 메이크업 트렌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핀터레스트는 올해의 뷰티트렌드에서 깊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다크 세이렌(Dark Siren)을, 팬톤은 올해의 컬러로 모카 무스를 꼽았다.
모카 무스 메이크업은 1990년대 여배우들의 스모키 화장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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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산업부 기자 |
불안정한 국제 정세, 고금리, 인플레이션 등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될수록 어쩐지 여성들의 얼굴은 화려해진다.
경제가 어려우면 화장품에 돈을 쓴다더니, 올해 상황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명품 가방이나 의류 대신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화장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럭셔리 브랜드들도 뷰티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특히 1854년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화장품을 출시하지 않았던 세계 최대 럭셔리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핵심 브랜드 루이 비통이 최근 ‘라 보떼 루이비통’ 컬렉션을 출시하며 뷰티 시장 진출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무려 창립 171년 만의 뷰티 사업 진출이다.
이는 불황마다 작은 사치를 찾는 립스틱 효과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행을 타는 의류나 가방과 달리 화장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다.
“명품백은 못 사더라도 립스틱은 명품을 바르고 싶어”라는 마음을 저격한다.
이미 국내에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의 뷰티 라인이 입점돼 있다.
에르메스,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등 패션 중심의 브랜드가 국내에 속속 들어왔다.
자크뮈스도 조만간 뷰티 브랜드를 내놓는다.
그러나 모든 럭셔리 뷰티 브랜드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화장품이라도 명품을 사고 싶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비슷한 발색력과 기능이라면 굳이 명품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고가 브랜드 못지 않은 제품력의 저가 제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가성비 쇼핑의 대명사로 꼽히는 다이소가 새로운 뷰티 채널로 떠올랐을 정도다.
요즘 국내 뷰티 시장은 해외 브랜드보다는 국산 브랜드간의 경쟁이 주를 이룬다.
매일같이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이 쏟아지는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브랜드들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정통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올해 들어 국내 시장에서 발을 빼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적지 않다.
LVMH의 자연주의 뷰티 브랜드 프레쉬(fresh)는 다음 달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예정이다.
2012년 진출 이후 꾸준히 시장을 공략했지만, 최근 2년 연속 매출 감소를 겪으며 결국 경쟁에서 밀려났다.
같은 LVMH 계열의 뷰티 편집숍 세포라 역시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뷰티 공룡 로레알이 운영하는 메이블린 뉴욕도 올해 상반기 중 국내 영업을 종료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마스카라 강자로 자리 잡은 브랜드지만, 국내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로레알은 이미 2023년 니치 향수 브랜드 ‘아틀리에코롱’도 철수시킨 바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연이은 철수 배경에는 K뷰티의 비약적인 성장이 있다.
과거에는 “어쨌든 외제가 좋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K뷰티 브랜드들이 제품력과 트렌드 반영 속도 면에서 오히려 글로벌 브랜드를 압도한다.
특히 인디 브랜드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같은 시장 변화는 국내 브랜드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 불황 속에서 뷰티 제품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가 글로벌 브랜드들이 잇따라 철수하는 상황이다.
탄탄한 기획력과 브랜드 스토리, 혁신적인 제품력을 갖추고 있다면 브랜드 팬덤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격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강한 브랜드뿐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뷰티 시장이 돈이 된다고 무작정 진출했다간 빠른 철수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확실한 차별성과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기업과 브랜드라면 이번 경쟁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개성있고 우수한 품질의 국내 브랜드들이 성장할 때 K뷰티 산업도 함께 진화할 것이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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