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대통령 취임식 직후 테헤란에서 피살되면서 중동 정세가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되는 가운데 하마스는 즉각 보복을 예고했고, 자국에서 동맹을 지키지 못한 이란 역시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긴급 소집했다.
자칫 이란이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전면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마스는 31일(현지시간) 오전 성명을 통해 "순교자 하니예가 이란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테헤란의 거처를 노린 시온주의자들(이스라엘)의 기만적인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도 성명에서 "하마스 정치국장 하니예가 오늘 아침 테헤란 거처에서 공격받아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순교했다"고 확인했다.

현재 하마스와 이란은 피살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 소행이 맞을 경우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직접 공격은 지난 4월 19일 이후 처음이다.
하니예는 전날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반군 후티 등 이른바 '저항의 축' 관계자들과 함께 이란을 방문, 수도 테헤란에 머물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가자지구 전쟁이 약 10개월째 이어지는 와중에 하마스 서열 1위 지도자가 사망하면서 당장 하니예가 핵심 역할을 해온 휴전 및 인질 협상에 차질은 물론, 중동 내 정세도 격랑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특히 이란 수도에서 확인된 이번 피살은 전날 저녁 이스라엘이 골란고원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한지 불과 몇시간에 이란 심장부를 쳤다는 점에서 중동 지역 전체로의 확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제 초점은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란이 자국 영토에 대한 공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며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광범위한 지역 전쟁의 발발로 이어질 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CNN방송 역시 "이번 사건은 중동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협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마스측은 즉각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계열 강경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도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저항의 축은 적과 대결에 완전히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하니예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테헤란에서 일어난 하니예의 순교는 이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사이의 깊고 뗄 수 없는 결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이날 오전 아야톨라 하메네이 자택에서 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긴급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주요 외신들은 보도했다.
주요 외신들은 하니예가 테헤란 방문 도중 숨진 사실을 주목하며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로 해석될 수 있음을 짚었다.
이란 혁면수비대는 이날 늦게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이란 국영TV는 전했다.

러시아, 튀르키예 역시 "비열한 살인", "정치적 암살"이라고 규탄했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이번 공격이 가자지구 전쟁을 중동 지역 전체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하니예 사망과 관련해 아직 공식 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현재 군 전선사령부의 지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이스라엘군은 현재 상황을 평가하고 있으며, 변동 사항이 생기면 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자지구 전쟁 해법찾기에 몰두해온 미국은 확전 가능성을 경계하며 신중하게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백악관측은 하니예 사망 소식을 접했다면서도 더 이상의 답변은 피했다.
필리핀을 방문 중인 오스틴 로이드 미 국방장관은 회견에서 하니예 피살과 관련한 질문에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면서 "외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는 항상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상황이 더 광범위한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