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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엄마 소리 한 번 하는 게 제 꿈이었어요. 엄마, 보고 계시죠?"(4남매 중 셋째 장희란씨(65, 실종 당시 7세))

"우리도 편하게 지내지는 않았어요. (동생들에게) 미안합니다"(4남매 중 둘째 장택훈씨(67))

31일 오후 2시 동작경찰서에서 열린 '장기 실종자 4남매 상봉식'. 4남매 중 맏이인 장희재씨(69)는 58년 만에 두 여동생 희란씨와 장경인씨(63, 실종 당시 5세)를 처음 만났다.
영등포에서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면서 가족과 헤어진 두 여동생을 만나기 전까지 볼이 빨갛게 상기된 희재씨는 연신 자신의 손을 주물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셋째 장희란씨와 막내 장경인씨를 보자 희재씨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희재씨는 희란씨를 끌어안고선 "학교에서, 교실에서 기다렸잖아. 3일 동안"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희란씨의 눈물도 그칠 줄을 몰랐다.

실종 신고자 희재씨의 두 동생을 찾기 위한 노력은 1983년부터 시작됐다.
KBS 특별생방송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실종 가족을 찾는 내용의 방송을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후 희재씨는 2005년 여름에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또 한 번 동생들을 찾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두 번의 시도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자 희재씨는 '고아원에 있으면서 피아노를 배우면 미국에 간다더라'라고 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희재씨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더 늦기 전에 다시 두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경찰서에 문을 두드렸다.
2021년 11월2일께 희재씨는 경기 안양만안경찰서에 실종된 동생 2명을 찾아 달라고 신고했고, 이 사건은 발생 당시 주소지 관할인 서울 동작경찰서로 이첩됐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두 동생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동작경찰서가 실종자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주민번호 조회, 장기실종자 프로파일링 검색 등 각종 기관을 조회했지만, 동생들이 지내던 보호시설에서 이름과 생일을 임의로 기록해놔 명확한 소재 파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희란씨의 이름은 혜정으로, 경인씨의 이름은 정인으로 바뀌어있었다.
결국 경찰은 희재씨의 DNA를 채취해 아동권리보장원(보장원)에 보내고 이와 일치하는 사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운명같게도 지난해 12월6일 실종 가족인 막내 경인씨도 인천연수경찰서에 가족을 찾겠다고 신고했고 인천연수경찰서에서도 경인씨의 DNA를 채취했다.
그로부터 6일 후 각 경찰서는 DNA가 유사한 사람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경인씨와 희재씨의 DNA를 2차로 채취해 보장원에 보냈고, 마침내 DNA가 유사하다는 통보를 지난 26일 받았다.
이후 경인씨는 실종 이후 계속 연락하며 지내던 희란씨와 연락해 네 남매의 상봉이 58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희란씨는 당시 "언니를 찾았다고 소리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힘이 쭉 빠졌다"며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경인씨와 희란씨는 이날 가족과 헤어지면서 있었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경인씨는 "처음에 노량진 전차 대합실에서 발견돼 아동보호소로 옮겨졌다"며 "지금으로 말하면 '자립청년'처럼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갔어야 했다"고 했다.
이어 "등록금을 안 냈다고 학교에서 쫓겨나면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힘들게 보냈다"고 회상했다.

희란씨는 "시집을 일찍 가 남편을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살고 있다"며 "아이를 낳았을 때 든 생각은 '절대 아이들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 나 같은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게 해야겠다'였다"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어 "언니, 오빠를 여기서 만난 것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맏언니는 우는 동생의 손을 어루만지며 "찾은 것만 해도 감사한 거다"며 "재밌게 살면 된다"고 달랬다.

희재씨는 "동생들은 기댈 데도 없고 아프단 말도 못 하고 불쌍하게 살았다"며 "밥 한그릇도 같이 먹고,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동생을 만나러 가겠다"고 전했다.
택훈씨도 "두 동생을 만났으니 서로의 자녀들과 함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