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비행기가 이륙할 때, 저희는 너무 행복해서 다같이 손을 붙잡고 울었어요.”
2017년 발달장애 자녀 80명과 그 가족 107명이 전세기를 빌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효니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이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자폐성 발달장애인 윤지현(19)씨의 애칭 ‘효니’를 따서 만든 것이다.
 | 2017년 5월 30일 서울장애인부모연대가 주최한 ‘효니 프로젝트’ 모습. 발달장애인 80명과 그 가족 107명은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나 2박3일간의 여정을 소화했다.
연합뉴스 |
윤지현씨는 15살 때까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 김미수(49)씨는 신혼여행이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딸을 낳은 뒤로는 중증 발달장애인인 딸이 낯선 비행기 안에서 당황하거나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돼 비행기에 오를 엄두를 못 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연대 측이 비행기 탑승에 어려움을 겪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모아 비행기를 띄웠다.
김종옥 이사가 5년 전 일을 회상한 건 최근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한 자폐성 발달장애인 기사를 접하면서다.
최근 대한항공이 발달장애인 승객의 탑승을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달장애인의 비행기 이용 문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모든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비행기 탑승을 포기했다”고 호소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 “착석 요구 안 들어” VS 승객 “요구한 적 없어”
대한항공은 지난달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자폐성 발달장애인 A(22·남)씨와 그의 어머니를 하기(下機) 조치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항공은 입장문을 내 A씨가 탑승교 밖을 나갔다가 다시 비행기로 들어오고, 승무원의 착석 요구를 따르지 않는 등 항공기 안전·운항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행동은 하기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A씨 측이 예약 및 탑승 과정에 A씨의 자폐를 알리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자 여론의 화살은 A씨 가족을 향했다.
본지는 대한항공의 입장문이 나오기 전후로 독일에 있는 A씨 어머니와 여러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당시 상황에 대한 양측 입장을 확인했다.
대한항공 측이 하기 요구를 한 이유로 제시한 탑승교로의 이탈과 착석요구 거부에 대해 A씨 어머니는 “승무원으로부터 착석 요구를 받은 적도 없고, 다른 승객들도 짐을 옮기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중이어서 착석해야 하는 시간도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소란이나 난동을 부렸다면 동승했던 승객들의 목격담이라도 있을 것이라며 억울해 했다.
자폐 고지 여부에 대해서도 A씨 어머니는 “예약할 때는 자폐인임을 알릴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었지만, 공항에 가서는 코로나19 검사할 때, 공항 라운지 입장할 때, 게이트 앞에서 대기할 때, 비행기 들어가면서 여러차례 ‘우리 애가 자폐가 있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한항공 측이 ‘기장 판단에 따라 하기시킬 수 있다’ 등의 사전 안내나 경고를 하지 않고, “기장 판단”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하기 통보를 하면서조차 사유를 설명해주지 않은 점이 가장 납득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당시 A씨 모자가 쫓겨나듯 갑작스럽게 하기하면서 고등학생 딸 혼자 비행기에 남았다.
 | | 연합뉴스 |
◆“저런 애는 데리고 타지 말아야지”…따가운 시선에 비행기 탑승 포기
발달장애인의 가족에게 비행기 탑승은 예전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큰 장벽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다.
긴장했을 때 귀를 막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행동 특성을 잘 모르기에 일부 승객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내곤 한다.
“저런 애는 데리고 타지 말아야지”라고 대놓고 힐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면 큰 용기로 시작한 여행에 긴장과 상처만 남는다.
일부 가족들은 발달장애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는 마음이 편할 리 없고, 여행이 즐거울 수도 없다.
많은 발달장애 가족들은 결국 여행을 포기하곤 했다.
효니 프로젝트는 이런 발달장애인들에게 비행기 탑승 경험을 제공하면서, 그간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돼 항공기 탑승을 포기해야 했던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현실을 알리려는 취지였다.
비좁은 탑승교를 건너기 무서워하는 자녀들도 있었고, 낯선 비행기 안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서로를 배려하며 큰 어려움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187명 모두 안전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당시 전세기는 아시아나항공이 제공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사전에 부모연대와 좌석 배정을 조율하고 캐빈 승무원(객실승무원) 2명과 의료서비스팀 소속 간호사를 추가로 탑승시키는 등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이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했다.
기내 환영 방송과 휠체어 서비스도 준비했다.
항공사 전 부문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전사적 TF팀을 조직해 지원 방안을 모색한 결과였다.
◆발달장애인 탑승 수월해지려면…“승객들 안심시켜야”
아시아나항공 사례는 발달장애인에게 비행기 탑승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지만, 실제 제공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기내 방송은 다른 승객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자폐성 발달장애인 아들과 해외여행을 자주 떠나는 김남연 서울부모연대 고문은 비행기에 탑승하면 앞뒤 좌석 승객들에 “죄송하지만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인인데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소란스러울 수 있다.
이륙한 뒤에는 진정이 될테니 조금만 참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해두곤 한다.
기내방송은 발달장애 가족이 승객들에 일일이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항공사가 나서서 발달장애인을 배려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다.
김종옥 이사는 “어떤 기장은 ‘지금 기내에 발달장애인이 탔는데,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서로 양해해서 갑시다’라는 안내방송을 한다고 들었다”며 “그러면 승객들도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항공은 지난 4일 A씨 어머니에게 보낸 설명문에서 “목적지까지 모시고 가고자 계속 상황을 지켜보며 노력했습니다만, 보호자인 고객님께서도 아드님의 행동을 통제하실 수 없었고 주변의 다른 승객들도 불안해하셨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대한항공이 승객들에게 미리 안내하거나 안심시키는 노력 대신 승객 불안을 근거로 탑승객을 하기 조치한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옥 이사는 “주변 승객들이 불안해 할 때는, 승객들에게 ‘이분이 발달장애가 있어서 진정제를 드셨습니다.
약효가 돌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기다려주십시오’라고 말해주는 방법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의 일련의 대응은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내 통로를 배회한 건 낯선 장소에 대한 발달장애인의 ‘탐색’ 과정인데, 이를 ‘통제되지 않는 행동’으로 단정해 하기 사유로 지목했다.
김남연 고문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위협이 없는지 탐색하고 싶어 하는데,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이륙 준비를 위해 착석해야 할 때 탑승교로 나간다면 중대한 하기 사유가 맞지만, A씨는 승객들이 탑승중이던 상황에 탑승교를 한 차례 다녀왔다고 A씨 어머니는 주장했다.
◆발달장애인도 비행기 탈 수 있도록 매뉴얼 필요
김남연 고문은 “이번 대한항공의 설명은 앞으로도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은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얘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발달장애인 승객을 보면 ‘이 사람도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게 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건 이후 온라인에서는 A씨 가족을 비난하는 댓글과 발달장애인을 향한 혐오발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회적 시선이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위축시킬 때, 발달장애인은 성장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김수정 부모연대 대표는 “비장애인도 어렸을 때 낯선 상황에 있으면 울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그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이게 별일 아니구나’ 깨닫고 적응하게 된다”며 “반면 장애인들은 사회적 시선에 갇혀, 그런 경험을 많이 갖지 못 한다”고 토로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발달장애인의 비행기 탑승을 지원하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씨 어머니는 “비행기를 이용할 때 물론 발달장애인의 가족이 해야 할 몫이 있는데, 항공사의 기준을 보고 컨트롤하는 것과 아무 기준도 없이 모든 행동에 노심초사하면서 있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공사가 탑승객을 내리라고 하는 기준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규정도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이번 사건을 알린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
|
등록안내
등록안내
돈을 더.내야죠.
항공사가 일번인들에개 받는 돈으로 더 좋은 환경을 만들라는 소리밖에는 안됨.
풍지박살난 가정에 돈을 더 내고 비행기 타라는 말은 타지 말라는 뜻 같네요.
그럼 님께서는 돈을 더 낼 의향이 있으시다는 거죠?
@우근주
합리적인 가격이라면 더 낼 의향은 있습니다만..
님 가족에 장애인 있으면 복지 해택이나 각 지원받으실 의향이 없으신건가요?
세금은 이런대 쓰는게 맞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