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여씨 등 22명 피해사실 확인
당시 무고한 이들 용의자로 지목
인권침해 일삼았던 정황 드러나
윤씨에 허위자백 받고 조서 작성
‘살해 초등생’ 사체 은닉 시도 의혹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당시 경찰이 무고한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를 일삼았다는 국가 차원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춘재에게 살해당한 초등학생 여아 사건과 관련해 당시 경찰이 시신을 은닉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등 은폐 조작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6일 오후 47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등 피해자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 2021년 1월 2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이춘재가 저지른 총 14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을 신청한 윤성여(55)씨 등 2명을 포함해 총 22명의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
윤씨는 이춘재의 8차 사건 이듬해인 1989년 7월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윤씨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지 않고 최소 27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조사했다.
다리 장애가 있는 윤씨에게 앉았다 일어나거나, 쪼그려 뛰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는가 하면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
또 경찰은 허위 자백을 강요하고 실제 문답 없이 진술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윤씨 음모의 동위원소 분석값을 좁히기 위해 인위적으로 분석 결과를 가공해 두 음모가 동일하다는 감정서를 수사본부에 회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윤씨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20년 12월 재심에서 사건 발생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은 윤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21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차모(사망 당시 38세)씨는 9차 사건 직후인 1990년 12월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차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새벽에 맨발로 뛰어나와 “나는 억울하다.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
무서워 죽겠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고 당시 주민들이 증언했다.
이춘재가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박모(당시 19세)씨 역시 경찰에 절도 혐의로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했다.
경찰은 박씨를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 수건을 씌운 채 짬뽕 국물을 붓는 등 고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 | 사진=연합뉴스 |
1989년 이춘재에게 살해된 피해자 김모(사망 당시 8세)양 사건도 이번 조사에서 은폐 정황이 나왔다.
당시 경기 화성경찰서에 근무했던 이모씨는 “1993년 수사본부로 복귀해 사무실 선반 위에 있던 붉은색 국민학생용 책가방을 본 후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니 김양 관련 유류품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김양의 시신 또한 발견됐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 직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불법구금, 가혹행위, 허위자백 강요 등 신청인을 비롯한 피해자들과 관련한 중대한 인권을 침해했다”며 “신청인 및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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