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난핵심판 결정은 변화의 마중물이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는 혐오와 반목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60일도 남지 않은 제21대 대통령선거는 중요한 시험대다.
다시 갈등과 혼돈의 늪에서 헤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각계 명사(名士)들의 제언을 전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한국 정치와 관련해 "협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개헌에 대해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이번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 간 개헌 논의를 위한 정치협상위원회 등을 만들어 개헌에 대한 약속을 담보한 뒤 내년 지방선거전까지 마치자"고 제안했다.
정 전 총리는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것과 관련해 "순리대로 됐다"며 "정치는 민심에 역행할 수 없다는 교훈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소회를 밝혔다.
1995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6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정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지난 30년간 한국 정치의 현장을 지켜봤던 인물이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파국적 정치 상황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정 전 총리는 '협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대통령은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하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보니 대통령이 의회를 적대시하는 경우도 있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대통령 본인에게도 손해일 뿐 아니라 나라에도 해가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하고 협치 노력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인 실천 해법으로 정 전 총리는 "영수회담을 정례화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도 개선해 실효성 있게 바꾸는 등 협치 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개헌은 결국 여야가 합의를 해야 하는데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대선 때 여야가 공감대를 만들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과거에도 대선 후보들이 개헌을 약속했지만 (개헌이) 안 됐다"면서 공약 이행을 위해 정치협상위원회 설치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1987년 개헌 당시에도 여야는 여야 중진들이 '8인 정치회담'을 통해 합의안을 마련한 바 있다.
정 전 총리는 "개헌특위 소위일 수도 있고, 별도 기구로도 만들 수 있다"며 "여기에서 개헌 논의를 진행해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6월3일로 예정된 이번 대선과 관련해 "대선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거 전후로 대면과 전화 인터뷰 형식으로 두 차례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헌재 선고 이후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치권이 자꾸 자기 진영을 키워 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나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170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는데 헌재 결정 전까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선고 후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노력을 해야지, 부추기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지금도 정치권이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자제해야 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어왔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신기술 등이 미래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런 산업들을 두고서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아주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 AI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우리는 머물러 있는데 다른 경쟁자들은 앞다퉈 나가면 결국 우리는 후퇴하는 거 아닌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경쟁력, 이런 부분들이 훼손돼 대한민국 위상이 뒤처질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다.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정치가 빨리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가 회복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들께 걱정을 드렸지만 정치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지금 정치가 실종됐다고 하는데 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정치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팬덤 등이 만들어지면서 갈등이 격화된 측면이 있다.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한데, 요즘은 양 진영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결국 각각의 진영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정 운영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입법부는 입법으로, 행정부는 국정 운영으로 각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
최근 연금개혁이 이뤄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야에 맡겨 놓으면 타협이 되는데 그동안 여당 뒤에 대통령이 있어서 안 됐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정치권 내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저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국민통합을 말했지만 잘 안 됐다.
원인은 정치에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갈등을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그런 문화에 빠져 있다.
정치인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지, 스스로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정치적 이득에 대한 유혹이 있더라도 이를 단절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어떻게 보고 있나.
▲걱정이 많다.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의 최강자였다.
지금은 그게 깨졌다.
깨져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깨졌다.
기업들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
우리가 앞섰다는 조선이나 반도체, IT 등에서 1등 하던 것들이 2등으로 처진 것이 많다.
특히 AI는 이제 이류다.
우리가 가졌던 기술력, 경쟁력과 관련된 부분이 중국에 뒤처지는 상황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
정치가 복원돼 경제가 전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앞으로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지난 3년간 우리 정치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토대 위에서, 새 정권이 출범하면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통합과 미래 지향적인 정치가 이뤄져야 대한민국이 우상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하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누구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당 대표도 경험했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이르기까지 당내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산업자원부 장관도 경험했으며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당 대표 격인 당 의장을 두 차례나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치력은 물론이고 실무 행정 능력까지 검증된 인물인 셈이다.
중요 정치 국면에서 그를 구원투수로 원하는 이가 많았던 이유는 여러 세력을 아우르는 품 넓은 정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정도를 넘어서는 행동을 자제하며 서로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 정치의 본령을 실천하고자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것도 이런 이유다.
국회의원들은 그를 삼부 요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 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는 국무총리를 지내며 행정부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당대표 등 요직을 두루 맡은 까닭에 대통령 빼놓고는 모두 다 경험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전 총리는 호남, 그중에서도 전북이 배출한 정치인이다.
195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고 전주 신흥고를 나왔다.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는데, 처음에는 정치 대신 기업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해 상무이사까지 올랐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 제안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뒤 역량 있는 모습으로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정치인 정세균은 역량 있고 품격 있는 정치인에게 주는 '백봉신사상'의 단골 수상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정치부 기자들과 정치학자 등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6년 제15대 총선부터 2016년 제20대 총선까지 6번 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될 정도로 정치 경쟁력을 보였다.
특히 19대 총선과 제20대 총선은 자기의 정치적인 고향인 전북을 떠나 서울 종로에서 연이어 당선됐다.
종로에서 맞섰던 상대는 대선주자급 유력 정치인 홍사덕(19대)·오세훈(20대) 후보였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정세균 후보가 보란 듯이 실제 투표에서 오세훈 후보를 꺾은 제20대 총선 결과는 지금도 여의도 정가의 화제다.
정세균 전 총리는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협치의 적임자로 꼽히며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총리 재임 기간, 코로나19 기간 방역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20대 대선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는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최근 이사장을 관두며 "진보적 열정을 가진 노무현의 후예들이 결국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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