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발사한 ‘군사정찰위성1호기’ 관련, 정부가 규정부터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대응 상 혼란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첫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밝혀왔고 정부 역시 이를 ‘위성’이라 지칭해왔다.
그러다 지난 29일 북한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위성 발사 날짜(5월 31일∼6월 11일) 등 발사 세부 계획을 사전 통보하자 말이 바뀌었다.
이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주재로 NSC상임위원회를 열면서 대통령실은 ‘위성 명목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했다.
말그대로 위성은 속임수고 실체는 탄도미사일이라는 의미다.
 | | 경계경보가 울리고 있는 31일 오전 6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전경. 독자 제공 |
◆미사일→위성→미사일→위성……
그 후 ‘북한 탄도미사일 이르면 31일 발사’라고 그대로 인용한 제목의 기사는 이날 하루에만 수백개 쏟아졌다.
대통령실은 NSC상임위원회 종료 후 회의 결과가 외교부를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언론에 공지했는데, 이날 회의 후 외교부가 낸 성명에선 ‘소위 ‘위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어진 한·미·일 북핵수석대표유선 협의 후 입장문도 ‘소위 ‘위성’’이라고 했다.
불과 몇시간 만에 ‘미사일’에서 ‘위성’으로 돌아온 셈이다.
또 대통령실 따로 정부 따로, 용어도 다른 셈이다.
당국의 통일된 평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은 31일에도 이어졌다.
북한 발사가 감행된 31일 오전 6시쯤, 우리 군은 ‘북한 주장 우주발사체’, ‘북한이 쏜 발사체’ 라고 판단을 제거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같은 시각, 서울시는 오발령한 재난문자에 ‘북한 미사일 발사’라고 했다.
새벽 난리통이 있은 뒤 오전에 합참은 발사체가 ‘미사일보다 우주발사체 가능성이 높다’는 공지까지 했는데, 오후에 외교부는 한·미·일 북핵협의 결과를 공지하면서 ‘소위 위성 명목의 장거리탄도미사일’이라고 썼다.
외교부가 써온 ‘소위 ‘위성’’을 뒤늦게 조태용 안보실장 용어로 끼워맞췄다.
 | 서울시가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해 위급 안내문자가 발송됐다고 시민들에게 문자를 전송한 모습. 군 당국은 북한의 발사체가 서해상으로 날아갔으며 서울과 무관하며, 경계경보역시 백령도에 내려졌고 서울시는 오발령된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
◆위성이나 미사일이나 그게 그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위성(발사체)과 미사일은 과연 혼용해도 되는 용어일까? 그렇지 않다.
위성(발사체), 즉 로켓과 미사일은 엄연히 다르다.
우주까지 쏘아올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운반체 위에 위성을 얹으면 그 운반체를 ‘로켓’이라 부른다.
미사일은 탄두를 얹어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등 다양한 거리의 목표지점에 발사하는, 무기로서의 운반체를 일컫는 말이다.
가령 탄두가 핵탄두일 경우는 핵미사일이 된다.
주로 목표지점에 떨어져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빈 탄두를 얹어 하늘로 ‘고각’ 발사를 하는 방식으로 북한은 미사일이 어디까지 멀리갈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해왔고, 이는 ‘시험 발사’라고 불린다.
단, 로켓과 미사일, 둘 다 무언가를 멀리 실어나르는 운반체라는 점에서 유사한 기술이 사용된다.
북한의 위성발사가 국제법 상 불법인 이유도 그때문이다.
북한이 위성을 쏘는 척 하면서 미사일 테스트를 하는 것인지 의심되고, 실제로 위성을 활용해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켜나갈 가능성도 있으니 ‘탄도미사일 기술이 이용되는 모든 발사를 금지‘(2009년 유엔 안보리 결의1874호)시켰다.
물론 미사일이 로켓으로, 로켓이 미사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각각 추가로 요구되는 기술이 다르다.
 | 31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발사체 관련 서울시 경보 오발령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31일 문자 공지를 통해 "군은 이날 6시29분쯤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방향으로 발사된 '북 주장 우주발사체'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 발사체는 백령도 서쪽 먼바다 상공을 통과했다.
최상수 기자 |
◆“위성을 미사일이라는 순간 본질 놓쳐”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이 ‘운반능력‘이 아니라 ‘정찰능력’에 초점을 맞추며 위성발사를 본격화하는 지금, 더욱 용어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북한은 이미 미국 본토까지 닿는 운반기술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고, 이 ICBM을 은밀하고 기습적으로 쏘는 데 필수인 고체연료 시험까지 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사일에 실은 핵탄두가 안전하게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기술 정도가 아직 미완성일 거라고 평가하고 있다.
운반능력 자체는 주시하고 평가, 분석할 대상 요소에서 멀어진 셈이다.
북한 스스로도 이번 위성 발사는 정찰능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라고 수차례 드러냈다.
특히 이번 발사는 운반능력 상향을 위한 시도가 아니라, 정찰능력을 강화하는 계획 중 큰 이벤트라고 본다.
정찰능력 강화는 이번 위성을 포함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근방까지 침투했던 드론도 포함된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위성을 탄도미사일로 보는 순간, 본질을 놓치고 상황과 북한의 의도를 잘못 보게 된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번 위성은 과거와 달리 ‘정찰능력’ 확보 용도
잘못된 규정은 국민에게도 정부 대응에도 치명적이다.
위성 발사, 미사일 시험, 미사일 발사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면 국민이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또 실제로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할 때 무슨 말로 ‘이번엔 진짜’라고 표현할지 대책이 없어진다.
정부 차원에서도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이번 발사를 ‘정찰능력 강화’로 보고 이에 대응할 것인지, ‘운반능력 강화’로 보고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에 따라 우리 군 내부의 대책, 국제사회를 상대로 펼쳐야야 할 외교적 대응 등, 총체적인 국가 대응의 초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 | ‘위성 명목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규정한 5월29일 NSC상임위원회 개최 보도자료. 홈페이지 캡처 |
이미 정부는 엄중한 대응은 커녕, 발사 직후에도 우왕좌왕 혼란상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이미 예고된 위성이 발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NSC회의를 열지, NSC상임위 회의를 열지, 대응 수준이 수립돼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31일 오전 6시 40분쯤부터 20여분간 이어진 언론 속보는 ‘대통령실 NSC 긴급소집 대통령주재’, ‘NSC 소집...안보실장 주재’ 등 속보가 쏟아지며 오락가락 했다.
‘NSC’는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고, 안보실장이 주재하는 회의는 ‘NSC상임위’다.
어떤 회의가 열리는가에 따라 사안을 얼마나 엄중하게 바라보는 것인지 국민은 판단하게 된다.
이번 위성 발사를 굳이 ‘탄도미사일’이라고 지칭하며 가장 강도높게 규정을 해놓은 대통령실에서 NSC가 아니라 NSC상임위원회가 열린 점도 의아스러운 대응이다.
◆“관성에 따른 정치적 선택은 위험”
한 전문가는 “단어 선택이 객관적, 기술적 평가에 기초하기보다 정치적으로 활용돼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1998년 북한이 처음으로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며 발사체를 쏘았을 때(위성이름 ‘광명성1호’ 운반체 이름 ‘백두산1호’), 미국 국무부는 ‘위성’이라 확인했지만 우리 정부는 탄도미사일로 규정했다.
우리 정부는 7년 후인 2005년에 위성이라고 판단을 바꿨다.
이 전문가는 “당시 정보의 한계도 존재하고 시간이 지나서 추가로 확인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정치적으로 활용한 뒤에 해석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25년이 흐른 지금, NSC가 ‘위성 명목 탄도미사일’이라고 규정한 발사 직후, 미국 백악관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발사’라며 사실상 위성을 뜻하는 표현을 했다.
문제는 시대가 변해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어느정도 완성하고 정찰능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위성을 미사일이라고 부른다고 경계심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니게 된 상황이다.
이 전문가는 “관성적, 정치적으로 위성을 미사일이라고 우겨 국민을 호도할 때가 아니라 사태를 정확하게 보고 그에 맞는 군사적, 외교적 대응 전략을 짜야한다”고 지적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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