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 상호관세 피했지만 '품목관세' 예의주시
배터리 업계, 생산 거점 최적화 및 미국 생산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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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부과 발표 행사 중 무역 장벽 연례 보고서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25% 상호관세를 산정했다. /AP·뉴시스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한국시간)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25%다. 앞서 다른 명목으로 지난달 25% 관세 부과가 예고된 자동차·부품 분야는 이번 상호관세에서 제외돼 한숨 돌렸다. 다만 예고했던 대로 이날부터 미국 외 지역 차량 생산품에 대한 25% 품목관세가 부과된다. 배터리 분야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표에 따라 25% 상호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수출은 1278억달러이며, 무역수지는 55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총수출액 대비 대미 수출 비중(18.7%)은 중국(19.5%)에 이어 2위다. 품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자동차가 347억달러로 1위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683억)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 50.8%에 달한다. 미 행정부의 이번 조치로 자동차 업계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배터리는 지난해 친환경 자동차 수요 감소 등으로 전년 대비 19.2% 감소한 39억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 연설에서 "자정부터 모든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특히 그는 "한국 내 자동차는 81%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일본 자동차 94%는 일본에서 생산된다"며 "난 친구와 적을 구분하지 않는데 많은 경우 무역에선 친구가 적보다 더 나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이번 조치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정부의 외교·통상라인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인한 국가 리더십 공백으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가 여러 차례 미국을 직접 찾아 한국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일본보다 1% 더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받으면서 '외교 실패'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안보전략TF 회의를 열고 "글로벌 관세전쟁이 현실로 다가온 매우 엄중한 상황인 만큼 통상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또 안 장관에게 "자동차 등 미 정부의 관세 부과로 영향을 받을 업종과 기업에 대한 긴급 지원 대책도 범정부 차원에서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한 대행은 이날 오후 주요 기업 등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제3차 경제안보전략TF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산업부 장관 주재 민관합동 미 관세조치 대책회의도 열렸다. 하지만 심각한 레임덕에 빠진 윤석열 정부가 유의미한 해법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치는 낮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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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민관 합동 미 관세조치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지난달 27일 안 장관이 대한상공회의소에 열린 대책회의에 참여해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일단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와 우리 정부 대응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추가적인 관세 없이 예고됐던 관세가 현실화된 것이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이미 현지 투자 확대 및 공장 생산량 증대 계획을 발표했고, 해당 조치들을 계획대로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오는 2028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미래산업 등 주요 분야에 210억달러(31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최근 완공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 규모를 현재 연간 30만대에서 50만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기존 현지 공장에 더해 최대 120만대가량을 미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 미국 판매량(171만대)의 70% 수준이다.
문제는 해당 조치는 시간이 필요한 프로젝트이고, 빠르게 해당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30%가량의 차량은 직접적인 품목 관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로 생산 원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부품 조달비 증가로 현 상황에서 현대·기아차의 현지 생산차량도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일정 부분 수익성 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현대·기아는 현지에 3개월가량의 재고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재고가 소진되기 전에 재협상을 통해 관세 면제 또는 완화를 얻어내야 한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대미 협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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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3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5 서울모빌리티쇼 미디어데이에서 "관세 발표를 봤고 그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며 "현재 미국에서 차 가격을 인상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
일단 현대차그룹은 관세 부과에도 미국에서 차 가격 인상 없이 상황 변화를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이날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5 서울모빌리티쇼 미디어데이에서 "관세 발표를 봤고 그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며 "현재 미국에서 차 가격을 인상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발 상호관세의 영향권에 들어온 배터리 업계는 생산 거점 최적화 및 미국 내 생산 확대 등으로 대응할 전망이다. 일례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일 GM과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 3기의 자산 일체를 인수해 단독 공장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사측은 "신규 증설 투자 부담 최소화 및 기존 설비 운용 효율성 제고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배터리 소재에도 상호관세가 부과될 예정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배터리 업체들은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관세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면서도 "양극재·음극재 등 주요 소재는 관세 영향권에 있어 제조 원가가 상승할 것이다. 캐즘 상황에서 자동차 가격까지 오르면, 캐즘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