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부품을 공급하는 충남 천안 소재의 2차 협력업체 A사는 연매출 3000억원 규모의 탄탄한 중견기업이다.
1997년부터 30년 가까이 업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알루미늄 합금의 강도는 유지하면서 무게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원천 기술 덕분이다.
이 기술을 앞세워 현대차·기아는 물론 미국 GM, 포드, 테슬라 등의 깐깐한 공급망도 뚫었다.
그런 A사의 연구개발(R&D) 센터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 과정에서 캐시카우인 부품 매출이 크게 준 데다 북미 공급망 확대를 위해 멕시코 시설투자를 단행한 게 화근이 됐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 대출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수익성도 악화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멕시코에 대한 관세가 오르자 협력사의 주문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결국 고임금의 R&D 인력부터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8일 만난 A사 R&D센터장(전무)은 "회사가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R&D 비용부터 삭감하기 시작해 올해는 '제로'가 됐다"며 "그래도 후배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내가 마지막으로 나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도 빠르고 안전하게 멀리 가려면 가볍고 강한 알루미늄 합금 기술이 필요하다"며 "이는 자동차 뿌리 기술인 동시에 미래차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견기업이 이 정도로 버티기 어려우면 이제 막 전동화 전환 대비를 시작한 중소기업은 더 볼 것도 없다"며 "풀뿌리 기업일수록 미래차 시장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는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용 모터와 전장 기기, 배터리 관리 기술은 물론 자율주행에 필요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소프트웨어(SW)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제대로 된 부품을 설계할 업체도, 인력도 태부족이다.
첨단 제조업의 마지막 보루인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현장형 인재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원팀'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래차 개발의 핵심인 R&D 분야 인재 수급과 관련해서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대응이 쉽지 않다.
중소기업은 내연기관 차량 부품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래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대기업의 경우 고액 연봉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노조의 반발과 경직된 노동 유연성, 공대 홀대 문화 등 고질적 병폐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GM이 과거 파산 위기 때 한국 공장을 철수하지 않은 이유는 국내 부품산업 경쟁력 때문"이라며 "미래차 분야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산 부품 등을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미국의 관세 위협 같은 비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주경제=한지연 기자 hanj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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