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삼성물산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2016년 맺은 '비밀 합의'를 둘러싸고 벌이는 약정금 반환소송의 2차전이 본격화된다.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과 법적 분쟁을 길게 가져간 다른 주주들처럼 지연이자를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6부는 오는 13일 오전 10시15분 엘리엇 측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의 2심 첫 변론기일을 진행한다.
이 사건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 7.12%를 보유하고 있었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하며 법원에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조정 신청을 냈다.
삼성물산이 공시한 1주당 주식매수가격(5만7234원)이 지나치게 낮은 것 같으니, 법원이 제대로 평가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은 매수가격 결정 사건에서 삼성물산의 공시 가격이 옳다고 판단했다.
엘리엇은 이에 불복해 항고했는데, 항고심 과정에서 엘리엇과 삼성물산은 '비밀 합의'를 맺었다.
합의 내용은 '소를 취하하는 대가로 다른 주주들과 동일한 보상을 지급한다'는 취지였다.
투자금 회수가 급했던 엘리엇은 1주당 5만7234원으로 계산한 주식매수대금과 2016년 3월까지의 지연손해금을 지급받고 소를 취하했다.
대법원은 2022년 삼성물산 1주당 가격으로 6만6602원이 적당하다고 결정했다.
당초 받은 주식매수대금보다 1주당 가격이 높아진 만큼, 엘리엇은 삼성물산으로부터 약 724억원(세금 공제 659억원)을 차액으로 받았다.
다만, 대법원 판결까지 소송을 이어간 다른 주주들만큼의 지연이자는 받지 못했다.
이후 엘리엇은 2023년 "미정산 지연이자가 있다"며 삼성물산에 약 267억원을 돌려달라는 약정금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삼성물산은 "합의 약정서에 근거해 이미 659억원을 지급했다.
여기에 지연이자까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 과정에선 비밀 합의상 '추가 지급금'을 어떻게 계산할지가 쟁점이 됐다.
엘리엇은 "합의서에 따라 다른 주주들에게 지급된 모든 금액, 즉 원금 차액은 물론 6~7년간의 지연이자까지 같은 기준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합의서에 담긴 '모든 손실, 비용에 대한 보상' 문구를 강조했다.
지난 9월 1심은 엘리엇의 청구를 기각했다.
합의서에서 언급된 '주당 대가'는 주식 가격 자체만을 의미하며 지연이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합의서 문언상 '본건 제시 가격을 초과해 제공한 주당 대가 또는 가치 이전의 가액'은 주식매수 가격의 원금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식매수 대금의 지연손해금 기산점(계산 시작점)은 동일하지만, 주주별로 지연손해금 발생 종결일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결국 지연손해금은 '주당 대가'로 환산되기 어려운 성질의 금원"이라며 "합의서에는 지연손해금을 주당 대가로 환산하는 정의 규정이나 계산 방식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국민연금 측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그룹 임직원, 삼성물산 법인 등 9명을 상대로 낸 소송도 본격적인 1심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10년) 만료를 앞두고 제기됐다.
합병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지분을 각각 11.61%, 5.04% 보유했는데, '합병 삼성물산'의 지분 가치는 기존 두 회사의 지분 가치를 더한 것보다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장에 적힌 소송가액은 5억100만원이지만, 실제 피해 금액이 구체적으로 산정되면 청구 규모는 수천억원대로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과 이 회장 측 모두 대리인단을 선임해 소송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아직 첫 변론기일은 잡히지 않았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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