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5개월 만에 ‘서킷브레이커’
반도체 등 모든 업종·테마주 ‘사색’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모두 추락
외인들, 코스피만 1.5조 매도 폭탄
美 실업률 최악·이란 보복 초읽기에
엔비디아 등 AI기업 부진까지 겹쳐
일각 ‘美 연준 금리 인하 실기론’ 제기
5일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자본시장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날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장중 10% 넘게 급락한 것은 미국발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시장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뉴욕시장에서 경기민감주로 평가받는 IT·기술주의 하락 여파가 국내 주식시장에 그대로 밀어닥쳤다.
엔비디아를 사모으던 ‘서학개미’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사모았던 ‘동학개미’도 모두 추락하는 주가를 보며 불안에 떨었다.
 | 코스피가 전 거래일(2776.19)보다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장을 마친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779.33)보다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에 거래를 종료했다.
뉴시스 |
이날 코스피는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모두가 하락했다.
전체 상장종목 936개 중 상승 마감한 종목은 단 10개 종목에 불과했다.
반도체는 물론 2차전지, 금융, 건설, 조선 등 모든 업종과 테마주 모두가 크게 하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피에서만 1조5000억원 넘게 순매도하며 매도세를 주도했다.
경기침체 우려 가능성에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주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엇보다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안 좋게 나온 것이 주가하락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7월 실업률이 4.3%로 작년 초 저점 대비 거의 1%포인트 상승했고, 신규 일자리가 11만4000개로 지난 4월을 제외하면 2020년 말 이후 최소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신규 실업보험 청구 증가나 임금 상승 둔화 등을 통해 노동 시장이 냉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끌었던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에서 설계 결함이 발견됐다는 보도도 악재로 작용했다.
국내 투자자도 이날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미국 테크업체들에 주로 투자해온 ‘서학개미’들도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5일 기준 서학개미가 보유한 주식 상위 10개 종목 중 6개 종목이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미국 내 빅테크 관련 종목들이다.
지난달 2일부터 이달 1일까지 한 달간 엔비디아 주가는 10.97%나 떨어졌으며 마이크로소프트(-9.18%), 테슬라(-6.23%), 알파벳(-7.59%), 아마존(-7.97%) 등도 급락을 피하지 못했다.
여기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암살되면서 중동 정세가 악화되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애플 지분 축소,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엔화의 낮은 금리를 이용한 투자기법)’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또한 투자시장을 움츠러들게 했다.
결과적으로 7월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에서도 금리 인하를 결정하지 않은 연준의 태도가 자본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주식시장 투자자들이 경제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제를 응원하던 입장에서 불황을 우려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경기지표가 안 좋게 나오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증시에 호재로 작용했는데, 지난주에는 고용지표가 매우 안 좋게 나왔는데도 주가가 급락해 경기 침체 우려가 번져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5일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평균주가가 미국 경기 침체 등의 우려로 직전 거래일보다 4451포인트(12.4%) 폭락한 3만1458에 장을 마감하며 사상 최대 낙폭을 경신한 가운데 도쿄 시내에서 양산을 쓴 시민이 도쿄증권거래소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
전 세계 증시는 당분간 변동성 높은 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이 연설하는 8월 말 ‘잭슨빌 미팅’이 변동성 장세의 1차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일부에선 시장의 이 같은 반응이 과도하다고 반박한다.
경기가 둔화하는 건 맞지만 침체에 빠지는 것은 아니며 달아올랐던 노동시장이 정상화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 경제팀은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기존 15%에서 25%로 상향 조정했지만 경기 침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도형 기자, 워싱턴=홍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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