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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인간미 담긴 친필 편지·엽서 문화재 된다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2-08-11 09:44:30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1904~1944) 시인의 대표작 '광야'의 한 구절이다.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냈다.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했다.


이육사가 1930년대에 근황을 담아 친척,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와 엽서가 문화재로 보존된다.
문화재청은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1일 전했다.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를 확정한다.


한문으로 작성된 편지에는 일상적인 안부는 물론 생활고에 대한 걱정, 건강을 기원하는 글이 담겨 있다.
중외일보 대구지국 근무 시절 겪은 생활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엽서 두 점은 시인 신석초와의 우정과 고향을 자주 찾지 못하는 아쉬움, 친척 간 정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이육사의 인간적 면이 파악되는 친필 자료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당시 이육사는 건강이 악화해 진로를 두고 고뇌했다.
의열단의 밀명을 계속 수행할지, 아니면 광복을 위한 투쟁에서 이탈할지 갈등했다.
그는 시와 글을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치고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북돋는다는 새로운 항일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수필, 평론, 번역 등 광범위한 문필 활동을 이어가며 '절정', '남한산성', '청포도', '파초', '독백'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한편 문화재청은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1921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함께 세워진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1969년에 도시개발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민족운동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움직임에 힘입어 서울 강북구 삼양로에 있는 천도교 봉황각 옆으로 이전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대 건축술의 한계와 민족종교 활동의 역사 등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역사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전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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