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입니다.

"올해 개막작과 폐막작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지향점과 부합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확신에 차 있었다.
두 작품을 설명하며 "아시아 영화의 미학이 21세기에 어떻게 계승되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예견했다.

개막작은 이란 하디 모하게흐 감독의 '바람의 향기(Scent of Wind)'다.
배경은 이란의 외딴 시골 마을. 하반신 장애가 있는 남자가 전신 마비 상태의 아들을 간호하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전기가 끊겨 전력 담당자가 방문한다.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려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닌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전통을 이어받은 모하게흐 감독은 인간의 선의가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세태 속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준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장애가 있거나 장애물에 걸려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반신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해 애먹는 노인을 도울 정도다.

백미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준 꽃다발이 온전히 전달되는 순간. 꾸준히 그려온 온기가 한 편의 시처럼 압축돼 나타난다.
허 집행위원장은 "매우 작고 고요하지만, 영화의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감동과 울림이 있다"고 설명했다.

모하게흐 감독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낯설지 않다.
2015년 '아야즈의 통곡'으로 뉴 커런츠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대다수 감독이 세상의 비참을 이야기할 때 이를 이겨내는 따뜻한 마음에 주목해 비평가들 사이에서 차세대 거장으로 거론된다.

폐막작은 일본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한 남자(A Man)'다.
2018년 요미우리문학상을 받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겼다.
츠마부키 사토시를 비롯해 안도 사쿠라, 구보타 마사타카 등이 출연한다.

알고 지낸 사람의 정체가 한순간 묘연해질 때 우리의 이성과 감정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내용이다.
이혼하고 아이와 함께 고향에 내려와 살던 리에는 다이스케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생활하던 어느 날, 다이스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에서 다이스케의 형이라는 사람은 죽은 남자의 사진을 보곤 자기 동생이 아니라고 한다.
리에는 변호사 키도를 만나 남편의 정체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게이 감독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묻는 데 머물지 않는다.
키도를 재일교포로 설정해 질문 수위를 정치적 문제로 확장한다.
키도가 한국인의 피를 갖고 있단 사실에 아내의 가족은 거부감을 드러낸다.
키도는 진실에 접근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대면하게 된다.

게이 감독은 미스터리 구조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은 욕망과 나를 나로 만드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충실히 담아낸다.
남다른 연출력은 이미 장편 데뷔작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2016)'으로 증명했다.
2016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됐다.
이 영화도 지난달 같은 절차를 밟으며 게이 감독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