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1756~1791)는 클래식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힌다.
불과 5살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고, 6살 때부터는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연주를 했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600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했고 숱한 걸작도 남겼다.
오죽하면 '모차르트는 신의 펜(pen)이었다'는 말도 있다.
신이 모차르트를 통해 음악을 작곡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국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베토벤을 이상적인 인간으로 평가한 저서 '왜 베토벤인가(원제: Why Beethoven)'에서 모차르트를 그저 위대한 베토벤의 비교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레브레히트는 베토벤에 비하면 모차르트는 그냥 관객을 즐겁게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평가절하한다.
모차르트의 경우 오페라로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교향곡과 협주곡은 불쏘시개 기능을 하는 정도에 그쳤고, 반면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에게 찾기 힘든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레브레히트는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달리 권력자에게 무릎굻기를 거부했던 인물이었다며 인격적으로도 베토벤을 우위에 둔다.
대중에게 베토벤은 불굴의 의지의 표상으로 각인돼 있다.
31살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도 위대한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레브레히트의 베토벤에 대한 존경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베토벤이 작곡을 했다는 자체가 기적인데 그의 음악이 이전의 모든 음악을 능가하는 위대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베토벤은 신체가 손상되면 정신적 보상이 주어질 수 있음을 가르쳐줬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한다.

사실 '왜 베토벤인가'는 베토벤이 왜 위대한 인물인지를 설명하기보다는 베토벤 음악에 대한 해설서에 가깝다.
레브레히트는 베토벤의 거의 모든 음악을 소개하며 이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들어야 할 지, 어떤 연주자들이 좋은 녹음을 남겼는지, 또 나쁜 음반은 무엇인지 설명해준다.
흔히 클래식음악을 좋아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해설서가 될 수 있다.
특히 좋지 않은 연주에 대한 그의 독설은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교향곡 3번 '영웅'에 대해 레브레히트는 보이지 않는 가까운 숲에서 누군가를 처형하는 두 발의 총성으로 연주가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레브레히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연주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는 변덕이 심하다는 이유로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벤 클라이번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글렌 굴드는 상상력이 과하고, 예브게니 키신은 몰아붙이기만 해서, 랑랑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은 연주가 아니라고 독설을 날린다.
레브레히트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음반 중 최고로 꼽는 음반은 에밀 길렐스가 레오폴트 루트비히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연주다.
그는 또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는 천국의 우아함을 보여주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연주는 기운이 넘치고, 언드라시 시프는 살짝 점잔을 빼고,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생기발랄하다고 평한다.
반면 랑랑이 2017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은 최악이라며 랑랑은 첫 번째 터치부터 만두처럼 두툼한 연주를 들려준다고 독설한다.
베토벤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들려주는 베토벤에 대한 여러 일화도 흥미롭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의 마지막 악장을 작곡할 때는 베토벤의 제자 리스가 남긴 글을 소개해준다.
베토벤이 한 시간 넘게 작곡에 몰두하다 리스가 여전히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오늘은 내가 레슨을 못할 것 같네. 해야 할 일이 있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베토벤 음악을 녹음할 수 밖에 없었던, 현대음악사를 수놓은 여러 지휘자들에 대해 레브레히트가 평가한 내용들도 흥미롭다.
왜 베토벤인가 |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548쪽 | 2만5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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