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 은의 재료로 항아리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풍광을 담은 최윤만 촬영감독은 극을 이렇게 요약했다.
60년대에서 80~90년대를 지나 현재 시점까지, 65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시대다.
세트 촬영과 현지 촬영을 거쳐 제주도 바다 마을과 시대 속 서울 시내를 완성했다.
관식(박보검)이 바다에 뛰어들어 방파제에 있던 애순(아이유)을 만나기 위해 수영하는 장면은 3개의 장소에서 찍었다.
배 위에 있는 관식 장면은 부산에서, 이를 바라보는 애순은 장흥에서, 또 세트장에서 각각 촬영했다.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고 떠올렸다.
색, 패턴, 질감 등 미술적으로 표현 가능한 요소로 풀어냈다며 "시대의 재현을 넘어 인물 간 감정과 기억의 공간 구현이 중요했다.
사실성보다 그 시절 감정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 공들였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세대의 공감도 중요했다.
미술팀은 "그 시절 고증을 거쳐 플래카드나 전단지, 포스터의 문체, 폰트, 색감, 레이아웃을 재현했다.
출력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해 만들었다"고 전했다.

제주도 어촌 마을과 제주 시내 거리를 구현 가능한 거대 세트장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과제였다.
제작진은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안동에서 적절한 부지를 확보했다.
세트장에는 제주도에서 육지로 반입이 불가능한 현무암 대신 베트남과 철원에서 공수한 현무암으로 제주 돌담을 재현했다.
금명이(아이유)와 영범이(이준영)가 군 휴가 중 헤어지는 장면은 인물과 배경을 따로 촬영해 합성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배 위의 장면은 특수효과팀과 CG팀의 힘을 합쳐 완성했다.
애순이 양배추를 팔던 장터는 시간이 흐르며 생선과 채소를 파는 시장으로 바뀌고, 시간이 흘러 중년의 애순이 좌판을 펼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또 애순이 상길(최대훈)과 맞선을 보던 휘앙새 다방은 시간이 흐른 뒤 순이네 세 이모네 식당으로 바뀐다.
인물의 생존기이자 시대의 변화까지 상징하는 장소들은 세트 구성 단계에서 변화를 고려해 설계했다.
시대마다 간판, 좌판의 재질, 도로 바닥 등 디테일을 달리해 표현했다.
인생에 파도를 몰아치듯이 요동치는 감정은 음악의 힘이 컸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장르적 접근보다 감정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낯선 음악은 시청자의 감정 흐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1회에서는 서양음악의 국악기를 활용한 개성 있는 음악을 완성했다.
국악기를 사용하면서 국악 리듬을 차용하지는 않았다.
애순의 테마는 플루트 대신 국악 피리를 사용했고, 60~70년대 서양에서 인기를 끌던 디스코 리듬에 거문고를 얹는 형식으로 사용했다.
가수 김정미의 '봄'을 비롯해 장덕의 '얘얘', 함중아의 '웃어주세요', 이치현과 벗님들의 '당신만이', 노고지리의 '찻잔', 정미조의 '귀로' 등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방 음악감독은 "신중현, 유재하, 김광석, 조용필 등 거장의 음악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40대 이상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유명한 곡들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해외는 저작권 규정이 엄격하고 까다롭다.
그중에서도 저작권 이슈가 가장 복잡한 그룹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를 사용한 배경에 대해 "최종 승인 허가를 받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며 "한국 드라마에서 비틀스의 원곡을 사용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도전이었다.
음악 편집 후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로 서라운드 음악 믹싱을 다시 했다.
돌비 애트모스란 흔히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5.1 서라운드 믹싱보다 더 진보한 서라운드 믹싱 기법이다.
방 음악감독은 "바닷가 마을 앰비언스(ambience)가 앞쪽으로 흐를 땐 음악이 자연스레 뒤쪽으로 움직이면서 흐른다거나, 태풍에 동명을 잃은 관식이 울부짖을 때, 카메라가 하늘에서 바닥을 향해 비출 때는 음악도 같이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등의 기술적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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