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애호가이자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갤런슨은 미술작품의 경매가를 들여다보다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는 경력이 쌓이며 작품의 가치가 오른 반면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션버그, 앤디 워홀은 아주 어린 나이에 가장 비싼 작품을 완성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예술가의 나이와 작품 가격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갤런슨은 개별 화가의 작업 방식과 예술적 특징, 최고의 작품이 탄생한 시기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를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떤 예술가들은 오랜 노력 끝에 인생 후반기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반면, 어떤 이들은 활동 초기에 자신의 분야에서 대혁신을 일으킨다.
갤런슨은 ‘천재와 거장’에서 전자를 ‘거장’, 후자를 ‘천재’로 분류해 각각을 ‘실험적 혁신가’와 ‘개념적 혁신가’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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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W. 갤런슨/ 이준호·강은경 옮김/ 글항아리/ 2만8000원 |
천재 유형인 개념적 혁신가는 귀납적이 아니라 연역적으로 일한다.
피카소가 대표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작업에 대한 명확한 아이디어와 지향점이 있었고, 그걸 고스란히 캔버스에 펼쳤다.
입체파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할 때 피카소는 불과 26세였다.
끊임없는 실험과 탐구를 통해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역작을 남긴 예술가들도 있다.
세잔이 대표적인 예다.
세잔의 전 인생은 달성하기 어려운 방법을 탐색하고 인식을 표현해 가는 긴 과정이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그림은 황혼에 접어들어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완성한 작품들이다.
개념적 혁신가가 단거리 주자라면, 실험적 혁신가는 마라토너다.
갤런슨에 따르면 문학이나 영화 같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이 두 접근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26살에 첫 장편영화 ‘시민 케인’(1941)을 만든 오슨 웰스는 개념적 혁신가, 앨프리드 히치콕은 실험적 혁신가에 속한다.
실험적 영화감독은 명확한 내러티브를 갖춘 이야기 전개를 강조하는 반면, 개념적 감독들은 선형적 서술이나 관습적 이야기를 피하며 시각적 이미지보다 영화의 각본을 더 중요시한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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