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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동물들]2~3초 촬영에 동물 착취 한국의 현주소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4-04-13 06:30:00
편집자주‘영화, 드라마 촬영 중 어떤 동물도 죽거나 다치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지금 우리 촬영장에서는 지켜지고 있을까. 국내 최대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가 최근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대여 및 섭외한 동물들이 촬영 후 어떻게 됐는지 물었을 때 ‘업체나 반려인에게 돌려줬다’는 답변은 절반에 그쳤다.
나머지는 ‘입양 보냈다’(22%), ‘모른다’(8%), ‘폐사(사망)했다’(3%), ‘자연에 방사했다’(1%) 등으로 나타났다.
또 60% 정도가 '동물들이 촬영 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졌지만, 오늘도 촬영장에서는 2~3초 영상을 위해 동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동물 보호에 미흡한 우리 촬영장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할리우드 선진 사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동물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의식 개선에도 불구하고 영화·드라마 촬영장에서 동물이 하나의 소품으로 취급되다 버려지는게 우리 촬영장의 현주소다.
동물이 촬영 중 죽거나 다치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제재나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 자라, 새끼돼지, 은어…소품으로 전락한 동물들

2022년 1월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낙마 장면을 찍기 위해 말 까미의 앞 발목을 와이어로 묶어 강제로 넘어뜨렸다.
달리던 말은 바닥을 향해 고꾸라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일주일 뒤 죽었다.
이를 통해 업계의 오랜 촬영 관행 문제가 수면 위에 드러나며 많은 대중이 ‘촬영장 동물 보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법원은 동물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된?KBS PD 김모 씨, 무술감독 홍모 씨, 말 소유자이자 드라마 승마팀장 이모 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부과했다.
공영방송 KBS에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올해 2월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파묘’는 ▲대살굿에 동원된 돼지 사체 5구를 계속해서 난자하는 장면 ▲축사에서 돼지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는 장면 ▲잔인하게 공격당해 죽은 돼지들 ▲살아서 펄떡거리는 은어를 땅에 미끼로 놔두는 장면 ▲절에서 1m 목줄을 찬 개(백구) 장면 ▲닭을 칼로 위협하는 장면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돼지, 닭, 개, 은어 등 등장하는 여러 동물이 소품으로 전락한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카라’는 동물들이 안전하게 촬영됐는지 물었지만, 장재현 감독과 제작사 쇼박스는 한 달 가까이 답하지 못하고 있다.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2022·감독 박찬욱)에서 주인공 해준(박해일 분)은 자라 58마리를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받는다.
달아나던 자라 절도범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서 자라가 논두렁으로 쏟아졌다.
발로 걷어차며 모은 자라를 자루에 담다가 손가락을 깨물린다.
자라를 발로 차 뒹굴뒹굴 구르는 장면에는 실제 자라가 동원됐는데, 촬영 이후 자라 세 마리가 죽었다.
촬영 현장에는 수의사나 전문가가 아닌 농장주를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는 1개월령으로 추정되는 새끼고양이가 촬영에 동원됐다.
고양이는 길에서 갓 구조된 듯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제작진은 새끼고양이에 성묘(어른 고양이)용 사료를 먹이는 장면도 촬영해 논란이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드라마 ‘장미맨션’(2022)은 길고양이가 한 남성에게 붙잡혀 잔혹하게 살해되는 장면에서 살해 행위와 소리를 생생히 묘사해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 제작’ 말뿐이었나

28년 차 영화감독 임순례 씨와 카라는 2020년 130페이지 분량의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를 만들었다.
미디어 속 동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았다.
동물이 촬영에 동원됐다가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 사항을 명시한 국내 유일한 가이드라인이다.


카라는 ‘동물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이하 동모본)를 꾸려 시청자, 관객들로부터 온라인 제보도 받고 있다.
동모본측은 “초기에 익명으로 제보해준 촬영장 스태프들이 있었다.
심각한 사례들을 접하고 놀랐다.
현재 질문을 취합해 제작사에 답변받아 온라인에 공개하는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가 촬영장 속 동물들이 보호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하는 게 중요하지만 약속만 있을 뿐 실현된 것은 없다.
2022년 ‘까미’ 사건으로 공분이 일자 정부는 기본원칙과 준수사항 등이 포함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 및 미디어 촬영에 출연하는 동물에 대한 보호·복지 제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별도의 개선 방안 발표나 법제화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카라의 조현정 정책기획팀장은 아시아경제에 “새 국회에서 동물촬영의 CG 활성화, 구체적 가이드라인 준수화 등이 법제화되도록 카라가 노력하겠다”고 했다.
조 팀장은 “제2, 3의 까미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모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동물들이 촬영장에서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걸 막기 위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달라”고 전했다.
법무법인 정진의 한주현 변호사는 “촬영현장에 맞춰진 구체적 법령이 필요하다”면서 “관련법 개정에 앞서 영상을 제작하는 관련 협회나 연출자 단체 등에서도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촬영장에서 동물 학대 행위를 할 경우 누구든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 (법에 규정된)이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 모두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태종 이방원’처럼 영상이 증거가 된 경우를 제외하고 촬영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의 경우 고발자들이 필요하다.
촬영장에서 동물 학대 행위를 목격하면 경찰청, 온라인 신문고, 동물보호단체 등에 신고할 수 있지만, 증거가 없으면 신고가 무산될 수도 있다.
카라는 “현장 확인과 수사 진행을 위해 직·간접적인 증거자료가 필수"라며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겨야 한다.
또 비정상적인 울음소리를 녹음하거나 독극물 등이 섞인 토사물, 학대에 동원된 소품 등도 유용한 자료가 된다”고 조언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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