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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나오시마에 예술의 향기를 입힌 사람들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3-06-10 10:22:36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이우환, 안도 타다오, 쿠사마 야요이, 소우 후지모토, 히로시 센주, 히로시 스기모토. 화가, 설치미술가, 디자이너, 조각가, 사진가, 건축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거나 활동중인 예술가와 건축가들이다.
국적도, 활동한 시기도 제각각인 이들은 한 섬(島)으로 수렴된다.



나오시마(直島)다.
시코쿠와 혼슈 사이에 있는 세토 내해(內海)에 있는 섬. 지리적으로는 혼슈의 오카야마현에 가깝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시코쿠의 카가와(香川)현에 속한다.
면적 14㎢, 인구 3000여명.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미 나오시마를 최소 한 두 번은 가보았다.
서울의 유명 갤러리는 아트투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여기에 반드시 포함되는 게 ‘나오시마 아트 투어’다.


나오시마에 들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다카마쓰를 통해 가는 것이다.
편도 요금이 520엔(왕복 990엔)인 여객선을 타면 50분 걸린다.
여객선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항해한다.
세토 내해의 섬들을 여유롭게 감상하기에 알맞은 속도다.


나오시마에 처음 가는 여행객이 육안으로 나오시마를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섬들이 비슷비슷해 보여서다.
소조 그러나 어떤 섬의 부둣가에 빨강색 조형물이 보인다면 더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
쿠사마 야요이(草間彊生 1929~)의 ‘빨강 호박’이다.
한번 보면 결코 잊히지 않는 강렬한 원색이 등대처럼 여행객들을 인도한다.


쿠사마 야요이는 현존하는 아티스트중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최근 빈번하게 부쩍 쿠사마 야요이가 미디어에 등장한다.
프랑스 명품브랜드 루이뷔통이 쿠사마 야요이와 콜라보로 제품을 출시한 것과 관련된 뉴스들이다.


파리 샹젤리제 루이뷔통 본점은 건물 외벽을 아예 빨강점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단발머리의 여성 인형이 건물 모서리에 매달려 있다.
쿠사마 야요이다.
서울의 루이뷔통 메종은 입구에 들어서면 온통 ‘노랑 바탕의 검은 점’이다.
루이뷔통은 쿠사마의 ‘페인티드 도트(painted dot)’ 이미지를 의류, 가방, 신발 등에 디자인해 판매한다.


2021년 태풍 루핏의 영향으로 나오시마에 설치된 ‘호박’이 풍랑에 떠내려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 일도 있었다.
선착장 콘크리트의 ‘호박’을 고정시키는 장치가 거센 파도에 빠져나가면서 생긴 일이다.
다행히 세토 내해에서 떠다니는 호박을 건져올려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섬 주민을 제외한 나오시마 여행객은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다카마쓰(高松)항에서 첫 페리(오전 8시12분)로 출발해 미야노우라(宮浦)항에서 마지막 페리(오후 5시)로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나오시마에 머물며 평범한 섬이 예술의 옷을 입고 바뀐 풍성한 표정을 체험한다.



이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2번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이곳에는 18인승 마을버스가 배 도착 시간에 맞춰 대기한다.
버스요금은 100엔. 택시가 없으니 자동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 한 지추(地中)미술관으로 가려면 무조건 이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내가 탔을 때는 입석을 포함해 25명이 탔는데 이중 서양인이 5명이었다.
승객들은 버스 안에서 낯설고 신기한 섬마을 풍경을 감상한다.
10분여 지나면 버스는 전통가옥 동네를 지난다.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에서 이방인들은 잃어버린 낭만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버스 기사가 잠깐 한눈을 팔다가는 목조주택과 부딪힐지도 모른다’ 혼무라(本村) 지역이다.
오밀조밀한 골목길에서 여행객들은 미로찾기처럼 에도시대의 전통가옥을 감상한다.
마을버스는 이곳을 지나 다시 바닷가를 끼고 달린다.
그리고 마을버스의 종점인 쓰쓰지소(つつじ莊)에 승객을 부린다.
여기서 지추미술관까지 가는 ‘베네세 하우스 지역’ 무료 셔틀로 바꿔탄다.


두번째 그룹은 미야노우라항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베네세 하우스 셔틀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큰 여행용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탄다.
베네세 하우스는 최소 6개월 전에 예약해야만 투숙이 가능한 호텔 겸 미술관. 이들은 최소 3~4일 베네세 하우스에 머물며 자연에 스며든 예술 섬을 느낀다.


마지막 그룹은 미야노우라항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나오시마섬에는 자동차길 말고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자전거여행자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자전거를 타고 지추미술관을 올라가는 부류도 꽤 보인다.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섬의 비경을 체험하게 된다.


당일치기 여행객이든 베네세 하우스 투숙객이든 나오시마에 내리면 대체로 먼저 가는 곳이 지추미술관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어서다.
물론 소수지만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부터 시간순으로 탐방하는 여행객도 있다.



지추미술관이 세상에 나온 게 2004년. 지추미술관은 30분 단위로 입장을 받아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는다.
도슨트의 안내를 받으며 지추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안팎. 관람객들은 노출콘크리트 숲속에서 펼쳐지는 회화와 빛의 예술에 경탄한다.



다음 코스는 이우환 미술관이다.
서늘한 숲길을 쉬엄쉬엄 내려가면 10분이면 충분하다.
2010년에 개장한 이우환 미술관은 옥외에 설치되었다.
노출콘크리트 벽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계단을 내려가면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짠하고 나타난다.
바다를 품고 있는 너른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원형의 돌덩이 몇 개, 돌덩이 위에 기울인 쇠막대, 붉게 녹슨 강철판. 이우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람객들은 덩그라니 놓여진 돌덩이에 당황스러워한다.
그러나 곧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동안 우리의 예술적 인식이 붓질과 소조의 예술에 갇혀 있었구나. 이곳에서는 예술이 미술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완벽하게 합일된다.


이우환은 2011년 백남준 다음으로 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을 연 사람이다.
돌덩이, 숲, 쇠막대, 잔디밭, 노출콘크리트, 하늘, 그리고 바다.
이우환의 돌덩이를 이리저리 살피고 만져보면서 관람객은 상념에 빠진다.
돌은 어디서 왔고, 나는 누구인가.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어떤 이는 이 돌덩이를 보면서 니체가 알프스 호숫가 산책길을 마주친 거대한 바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영원회귀 사상이 발원된 그 바위 말이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995년에 완공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안도 타다오의 첫 번째 프로젝트. 호텔과 미술관을 융합시킨 게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이다.
베네세는 일본의 교육출판 기업. 라틴어의 베네(bene: 좋은)와 에세(esse: 존재)의 조어. 베네세 하우스 오벌(Oval)이 나오시마의 상징 이미지중의 하나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안고 타다오의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2004년 지추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 ….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보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평지와 이어진다.
저 멀리 노랑 호박이 점처럼 보인다.
그 옆이 미야노우라항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쓰쓰지소. 노랑 호박을 향해 걸어가는 데 왼편의 너른 잔디밭에 알록달록한 원색의 조형물이 두 개가 보인다.
그 뒤로 학교 교사(校舍) 같은 건물이 나지막하게 보인다.
‘시간의 복도’가 상설전시되는 히로시 스기모토 갤러리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가 스기모토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그러나 나는 교사 앞, 넓은 마당에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듯한 조형물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왠지 정감이 간다.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작품명 ‘캣(Cat)’과 ‘쌍봉낙타(Camel)’. 작품에 올라타거나 만지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작가 이름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두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형물의 색감과 디자인이 친숙하다.
가만,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어디서 봤더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니키 드 생팔’을 처음 접한 것은 2015년 파리 마레지구에서였다.
퐁피두 센터 옆에 직사각형의 광장이 보인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에 있는 게 스트라빈스키 분수다.
봄, 여름, 가을 이곳은 파리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시민들은 분수대 턱에 걸터앉아 자유를 만끽한다.
이 분수 가운데에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이 마치 연꽃처럼 피어 있다.
그 ‘니키 드 생팔’을 나오시마에서 만날 줄이야.


나오시마 야외 전시 예술품의 백미(白眉)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다.
푸른 바다, 푸른 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놓여진 노랑 호박. 여행자들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모두 노랑 호박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바다와 당당하게 마주하는 노랑 호박의 고독을 음미한다.
나오시마 예술 투어의 클라이막스는 안도 타다오의 지추미술관이다.
그 나오시마 예술 투어의 시작과 끝은 쿠사마 야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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