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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전사의 슬픔 담긴 류성룡 '달력' 일본서 돌아와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2-11-24 17:24:27

"당초 이순신이 고금도(古今島)에 있을 때 내가 논핵을 받아 파직된 것을 듣고 (…) 크게 탄식하기를 '시국 일이 한결같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매번 배 안에 있을 때는 맑은 물을 떠 놓고 (…)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을 무릅쓰자, 부장(副將)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하여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 표지에 적힌 기록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 저자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이 경자년(1600)에 썼다고 추정된다.
그 존재는 김문경 교토대학 명예교수의 제보로 처음 알려졌다.
'대통력'은 오늘날 달력에 해당하는 책력(冊曆·월일과 절기 등을 적은 책).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형태는 일종의 다이어리와 흡사하다.
날짜 옆에 일정, 개인적 생각 등이 적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면밀한 조사를 거쳐 지난 9월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를 국내에 들여왔다고 24일 전했다.
고전학자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두 달간 내용을 검토한 끝에 이순신 관련 기록 등을 확인해 복권기금으로 사들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한 뒤 연구·전시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류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는 표지 포함 열여섯 장 분량이다.
크기는 가로 20㎝·세로 38㎝로, 흔히 쓰는 A4 종이보다 조금 길다.
책자에는 먹물로 쓴 글씨를 뜻하는 묵서(墨書), 붉은색의 주서(朱書) 등으로 경자년(1600년) 203일의 날씨, 약속, 병의 증상과 처방 등이 적혀 있다.
언급된 인물은 190여 명에 달한다.
문화재청은 류성룡의 수택본(소장자의 손때가 묻은 책)으로 추정했다.
근거는 그의 문집인 '서애집'이다.
관계자는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와 내용을 대조해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종이를 사용해 임시로 책을 매어둔 표지에는 위아래가 잘린 채 여든세 자가 남아있다.
글에서는 '여해(汝諧)'라는 인물이 거론된다.
이순신의 자(字), 즉 충무공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정에서 지휘하다 전사한 상황이 묘사돼 있다.
문화재청 측은 "표지에 쓰인 종이는 '징비록'에 쓴 것과 유사한데 이 책은 이면지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며 "충무공 사망 당시 소회를 밝힌 글을 쓰고 이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통력에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1567∼1618)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1600년 돌아온 일을 비롯해 당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 여럿 담겨 있다.
쌀을 어떻게 빚고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등 술 7~8종을 제조하는 방법도 적혀 있다.
류성룡의 종손 가에서 소장해 온 문헌과 각종 자료인 '류성룡 종가 문적(柳成龍 宗家 文籍)'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관리된다.
대통력은 여섯 권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경자년 기록은 나와 있지 않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70년 국내에 들어와 약 280년 동안 쓰인 대통력은 국내에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다.
경자년 대통력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애 선생의 기록뿐 아니라 경자년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향후 기록문화 유산 연구 및 활용에도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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