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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중요한 비밀들 파헤쳐 가는 또 하나의 장편”
세계일보 기사제공: 2022-08-16 20:30:00
탐정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 펴낸 손보미
베트남에 파견됐다 돌아온 노동자
자신의 정체성 불안을 겪는 사람들
방송국 피디와 형사, 살인사건 추적
“베트남전으로 일어난 모든 사실들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수는 없어
소설 읽고 현대사 속 의미 생각해야”


일하기 싫구나, 책이나 읽을까.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전인 2017, 18년경. 소설가 손보미는 경희대 중앙도서관에서 별생각 없이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도서관을 다니며 곧장 소설을 써오던 그였다.
책은 윤충로씨가 쓴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였다.

책에는 베트남에 다녀온 군인이나 노동자 구술이 담겨 있었다.
특히 한진에서 베트남에 파견한 노동자들이 한진빌딩을 점거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베트남에서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귀국한 이들은 한진빌딩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고 결국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가야 했다니. 기사들은 많았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손보미가 사회파 탐정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베트남전에 다녀온 노무자 문제를 제기해 사회적으로 좀 나아가는 이야기가 됐다”고 말한다.
이제원 기자
아무리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지만, 어떻게 전혀 모를 수 있지? 깜짝 놀랐다.
베트남전쟁에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지? 전쟁에 참전했거나 다녀온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젠가 이 사건을 소설로 그리겠다고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로부터 2, 3년 후. 장편소설 연재를 준비하던 그는 휴대전화 메모장을 살펴봤다.
뭘 쓸까.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재미있다 싶으면 꿈까지도 자다가 메모장에 적어놓던 그였다.
메모 가운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부모가 누군지 몰라서 불안한 사람, 자신이 어떤 병력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사람.’ 부모를 모른다면, 자신의 병이나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겠지. 자신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써보자. 메모장에는 꿈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남자가 가스 라이팅을 해서 청소년들에게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든다.


베트남에 파견됐다가 돌아온 노동자와,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불안해하는 사람과, 청소년들을 가스 라이팅하는 남자. 2020년, 그는 3개의 아이디어를 엮어서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방송국 피디와 형사가 등장해 살인 사건의 배후를 쫓는 소설가 손보미의 첫 사회파 탐정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안온북스)이 태어났다.

소설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0대 청소년이 함께 어울리던 또래를 잔인하게 죽이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범죄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국 피디 유형은 동료 부정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40대 여형사 경언과 공조해 함께 진실 추적에 나선다.
그들에게 주어진 단서는 ‘꽃이 피어 있는 을지로의 숲’에 가보라는 다른 청소년의 조언뿐. 여기에 유형의 상사인 영민이 얽히고설키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져 가는데.
본격 문학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젊은작가상과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손보미는 왜 사회파 탐정소설, 이른바 장르물을 써야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정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손 작가를 지난 9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첫 탐정소설이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셜록 홈스나 애거사 크리스트처럼 본격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추리 과정이 있어야 했기에 그 과정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누가 언제 무엇을 했고, 누가 누구를 만났으며, 전화는 언제 왔는지 등 세세한 항목을 맞추는 게 힘들었다.
나중에 출판사 편집부에서 사건 타임라인을 보내줘서 맞지 않는 내용을 고쳤다.
세세한 항목을 다 맞추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여형사 경언은 어떻게 탄생했나.

“2017년 엔솔로지 작품집에 조직에서 밀려난 여자 경찰이 누명을 벗기 위해서 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탐정소설 ‘이방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여형사 경언은 여기에서 나온 것 같다.
다만 ‘이방인’에서는 젊은 여성이었지만, 이번 소설에선 다소 곰처럼 보이기도 하고 호랑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물, 일을 할 때는 무섭고 철저하지만 평상시에는 수더분한 여성, 사람들에게 약간 퉁명스럽게 대하는 경찰을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빵을 좋아해 특이했다) 처음에는 빵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형이 경언에 접근하지 못해서 빵을 사러 갈 때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빵을 사서 갖다 주면 경언이 일을 하지 않을까. 그때 빵을 좋아하는 경언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사실은 제가 빵을 되게 좋아한다.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제일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가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것도, 베트남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도, 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도, 파견 노동자들 역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으로 쉽게 나눌 수는 없다.
다만 소설을 읽고 현대사 속에서 베트남전쟁이 지니는 의미 같은 것을 조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본격 문학 입장에서 보면 장르물을 본격적으로 쓴 셈인데.

“너, 도대체 뭘 쓴 거야? 친구들이 조금 놀라긴 하더라. 이번 장편소설은 본격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은 아니다.
제가 했던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장편 ‘디어 랄프 로렌’은 주인공이 랄프 로렌의 행적을 추적하는 형식의 작품이고, ‘작은 동네’도 여주인공이 자신의 과거 비밀을 밝혀나가는 내용이다.
저는 중요한 비밀이 있고 이 비밀을 파헤쳐 가는 게 장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이런 특성을 조금 더 본격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난 손보미는 2009년 단편소설 ‘침묵’이 ‘21세기문학’ 신인상에, 2011년 단편소설 ‘담요’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차례로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맨해튼의 반딧불이’ 등을, 중편소설 ‘우연의 신’과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작은 동네’ 등을 창작했다.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두 번째 소설집을 쓸 때까지, 저는 소설을 쓰기 전 계획을 타이트하게 세워놓고 썼다.
하지만 최근 2~3년간 메인이 되는 이미지나 사건 정도만 정해놓고 그것에 접근해 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
좀 퍼진다는 느낌도 든다.
다시 타이트한 것과 느슨한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식으로 작품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기적으론 즐겁고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쓰고, 독자들도 제가 느꼈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


“아마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런 생각도 좀 했던 것 같아요.” 대신 독자나 작가를 비롯해 타자에 대해선 말끝마다 존칭인 ‘분’이나 ‘님’ 등을 깍듯하게 붙였다.
“독자분”, “참전했다가 돌아오신 분들”….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많지 않은 소설가 가운데 한 명인 손보미 작가. 적지 않은 이유와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남다른 겸양이나 겸손도 꼽힐 것이고, “오늘보다 내일 더 잘 쓰는 게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은 더 많은 쓰는 것”을 바라는 소망도, 매일 하루 이천 자를 쓰고야 말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본격 문학의 영토 확장에도 부디 성공, 도전 정신까지 좋다는 평가도 더해지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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