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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장르·문법 다변화…서울여성영화제 눈여겨볼 일곱 편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2-08-14 11:00:00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오는 25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상암과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다.
여성 영화를 통해 영화의 다양성 확산을 도모하는 행사다.
오프라인에서 서른세 나라 작품 122편, 온라인에서 열다섯 나라 작품 스물여섯 편을 상영한다.
대표적인 경쟁 섹션인 ‘발견’에는 열두 편이 이름을 올렸다.
여성주의 시선과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소재·캐릭터·장르·문법 등이 다변화됐다.
대부분 성소수자를 입체적으로 다루며 경계를 탐험한다.
일부 작품은 형식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꾀한다.
눈여겨볼 일곱 편을 소개한다.



김세인 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한집에서 살면서도 살갑지 않은 모녀 이정과 수경. 마트에서 다투고 딸의 차가 엄마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정은 수경의 급발진 주장을 믿지 않는다.
사고는 물론 지난 삶 전체를 사과받으려고 한다.
김세인 감독은 모녀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내밀한 혼란에 주목한다.
첫 신에서 속옷 빨래로 감정적 굴레를 보여주고 다양한 관계를 엮어 모녀라는 태초의 관계가 가진 영향력을 전한다.
서로를 원하고 원망하는 두 여자의 치열한 대화를 일상 속 재난처럼 묘사한다.
남선우 프로그래머는 "배우 양말복의 어머니 연기가 엘레나 페란테 소설의 한 구절인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엄마 놀이를 하는 딸일 뿐'을 떠오르게 한다"라고 평했다.



이완민 감독 '사랑의 고고학'

만난 지 여덟 시간 만에 연인이 된 영실과 인식.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자고 약속하지만 헤어지고 만다.
영실은 8년 뒤 인식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완민 감독은 영실의 직업인 고고학자처럼 과거를 훑으며 고통과 환멸, 수치의 시간을 펼친다.
뒤틀린 관계의 더께에 매몰된 모습을 들추어내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 식이다.
불온한 관계의 자장 안에 머물던 영실을 질책하거나 합리화하는 시도가 아니다.
마음속 이야기를 발화하기 시작한 서툴지만 단호한 첫걸음을 응원한다.
김현민 프로그래머는 "인물의 깊은 내부로 함께 내려가서 아픔과 본연의 결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돌아오는 여정"이라며 "긴 러닝타임이 체감되지 않을 만큼 밀도가 높다"라고 소개했다.



모니아 쇼크리 감독 '베이비시터'

술김에 여성 기자를 성추행해 직장을 잃은 세드리크.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괴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피해 당사자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소설책 분량의 사과 편지를 작성해 출판하려고 한다.
이를 쇼라고 생각하는 연인 나딘은 아이를 보모에게 맡긴 채 인근 모텔에서 밀린 잠을 잔다.
쇼크리 감독은 보모를 세드리크가 교정하려는 여성 혐오적 발상을 부추기는 시험적 존재로 그리고 광적인 스크루볼 섹스 코미디를 펼친다.
렌즈 왜곡과 극단적인 줌 샷, 몽환적 미술 등으로 이야기 전반에 기괴한 풍자를 수놓는다.
김소미 프로그래머는 "페미니즘 백래시, 엽렵한 성찰까지 제공하진 못하나 환상 동화로서 사회적 드라마가 주지 못하는 아드레날린을 일으킨다"라고 평했다.



실비나 슈니세르·울리세스 포라 감독 '카라히타'

계급과 인종을 초월해 유사 모녀 관계를 맺은 사라와 유모 자리사.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한 사고로 친밀감은 시험대에 오르고, 평생 함께한다는 환상은 깨어지고 만다.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심리 스릴러다.
슈니세르·포라 감독은 수풀과 바다, 술과 담배, 나른하게 부서지는 햇살 등으로 불안함과 위태로움이 가득한 세계를 조성한다.
그 안에서 계급 격차를 가시화해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손시내 프로그래머는 "죽음에 대한 전통 의례가 벌어지는 동안 상실과 죄의식을 소화하지 못한 자의 몸짓이 새겨진다"라고 소개했다.



베아트리체 발다치 감독 '더 덴'

부모와 함께 시골에 사는 열여덟 살 줄리오. 이웃집에 이사 온 리아의 이상하고 위험한 게임에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미성년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다.
퇴폐와 탐미를 오가는 러브스토리 같지만 냉정한 고통의 은신처에서 걸어 나오는 탈출극에 가깝다.
팜므파탈처럼 묘사되는 듯한 리아. 줄리오가 리아의 집안을 엿보는 순간 그 전형은 심하게 우그러진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나타난다.
베아트리체 발다치 감독은 섹슈얼리티를 축으로 인물 간 관계를 점화한다.
시선의 주체를 역전하고 불온한 연대를 조직한다.
김소미 프로그래머는 "여성의 발화되지 않은 고통에서 고립과 소외의 궤적을 찾아내고, 아픈 여자들이 처한 연약한 생존의 조건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라고 평했다.



이지은 감독 '비밀의 언덕'

열두 살 소년 명은이 글쓰기로 자신과 가족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이야기. 명은은 억척스러운 엄마와 게으른 아빠를 숨기고 저만의 특별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다.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고르며 마음속에 야트막한 '비밀의 언덕'을 마련한다.
전학을 온 혜진의 솔직하고 당당함을 엿보며 진실의 힘도 곱씹는다.
외면하기 어려운 관계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으로 발전해 고유한 세계를 일구어 가기 시작한다.
차한비 프로그래머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자 재능과 정체성을 고민하는 창작자에 관한 기록"이라며 "저마다 사정이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 너그러운 시선 속에서 조화롭게 어울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라고 소개했다.



슈토 린 감독 '히라이테'

같은 반 남학생 다토에를 사랑하는 아이. 다토에에게는 여자 친구 미유키가 있다.
다토에를 향한 욕심과 미유키를 향한 호기심 사이에서 아이는 점점 대담해지는데…. 슈토 린 감독은 하이틴 로맨스의 전형을 가뿐히 무시한다.
이성애 중심의 서사를 거부하고,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묘사한다.
남선우 프로그래머는 "어린 날의 사랑이 자아를 둘러싼 껍질을 벗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며 "어둠을 달리는 자전거, 벚꽃처럼 흩날리는 종이학 등의 이미지로 청소년의 위태로움을 소중히 돌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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