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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소설가에게 남는 건…소설가가 답했다 "사람"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2-05-13 11:40:27

"실상은, 그러니까, 아주 간단히 말해, 출판사가 매우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 ‘Y교수와의 대담’은 이렇게 시작한다.
작가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Y교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어가 Y교수, 작가 셀린에 대한 인터뷰다.
그는 ‘일하기’를 바라는 가스통 갈리마르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스통 갈리마르는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르’의 창립자이면서 앙드레 지드 등과 문예평론지를 창간한 인물, 그가 원하는 일하기는 라디오에 출연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기자들에 전화를 돌려 잡지에 게재되게 하는 것이라고 셀린은 생각한다.
그 ‘혼란스럽고 끔찍한 과정’에 참여하는 대신 셀린이 고육지책으로 떠올린 것이 이 인터뷰다.
그렇게 해야 출판사가 심각한 판매부진을 겪는 시대, 한 권이라도 책을 더 팔 수 있을테니까. 실제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신작 소설을 발표하기 전 일종의 홍보용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위선과는 거리가 먼, 이 솔직함이 소설 ‘Y교수와의 대담’을 관통한다.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알베르 카뮈, 마르셀 프루스트와 어깨를 견주는 20세기 프랑스 작가로 자유롭고 신랄하게 현실을 비판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현실을 다룬 소설 ‘밤 끝으로의 여행’이 그의 데뷔작이다.
1936년 자본주의를 공격한 두 번째 소설 ‘외상 죽음’을 발표했고 러시아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내 탓이오’를 써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을 인터뷰해 홍보하는 책이 필요하게 된 까닭은 공공연하게 밝힌 그의 반유대주의 탓이다.
그는 이로 인해 2차 세계대전 후 대독 부역자로 단죄를 받아 덴마크에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문단과 강단은 철저하게 그를 외면했다.
덴마크에서의 형기를 마치고 막 프랑스로 돌아온 직후 소설가로서 남은게 아무것도 없는 시기 그는 ‘Y교수와의 대담’을 집필했다.


Y교수는 다름 아닌 작가 자신, 자신이 자신을 인터뷰하는 소설인 셈이다.
셀린은 한 공원에서 Y교수를 만난다.
둘은 갈리마르의 집까지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눈다.
이 간단한 이야기에 셀린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는 당신은 뭐냐고 묻는 Y교수의 질문에 "다만 별 볼 일 없는 발명가"라고 답한다.
아주 사소한 기법 하나를 발명했을뿐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셀린은 각종 비속어를 포함해 당시 프랑스의 농촌과 도시의 뒷골목, 시장바닥에서 건져올린 날것의 언어를 거침없이 활용한 독특한 문체를 ‘발명’했다.
그는 자신의 이 발명품이 아주 사소한 기법이며 언젠가 잊힐 통나무 모양의 작은 단추처럼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문어에서 감정을 구현한 자신의 발명이 저 ‘관념’들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내게는 관념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내 생각에, 관념이란 것보다 더 천박하고, 진부하고, 역겨운 것도 없습니다"라고 셀린은 외친다.


그럼에도 작가는 ‘중요한 글이 아니다’며 Y교수와의 대담을 마무리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글을 누군가 기다리고 읽는다면 이미 중요하다.
이는 소설가에게 무엇이 남는냐는 질문에 대해 셀린은 ‘사람’이라고 답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의 답은 오늘날 글을 쓰고 읽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의미하다.


(Y교수와의 대담/루이페르디낭 셀린 지음·이주환 옮김/읻다/1만5000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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