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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죽음이 사랑한 엘리자벳…그를 향한 연민과 분노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2-09-23 15:20:55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어둠의 적막을 뚫고 무대에 등장한 남성 루이지 루케니. 엘리자벳을 암살한 아나키스트로 100년간 이어지는 재판에서 자신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음’을 사랑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이다.
극은 루케니가 증인을 세우기 위해 죽은 자들을 다시 깨워 과거 이야기를 소환하면서 시작한다.


작품은 사실에 허구를 더한 판타지물이다.
원작자 미하엘 쿤체가 70년간 스위스 정부 기밀 문서로 보관된 엘리자벳의 일기장 내용을 기반으로, ‘엘리자벳이 합스부르크 왕궁에 죽음을 데려왔다’는 오스트리아 민담을 더했다.


작품의 특징은 죽음을 인격화했다는 점이다.
활기 넘치고 자유분방한 엘리자벳은 어린 시절 ‘죽음’을 마주해 목숨을 잃은 위험에 처하지만, 그의 아름다움에 반한 죽음은 그를 살려두는 대신 엘리자벳의 주위를 맴돈다는 설정이다.
루케니는 작품의 해설자 역할을 맡아 무대와 객석을 종횡무진 한다.



죽음과 동행해서일까. 이후 엘리자벳의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다.
자신에게 반한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시어머니 소피와의 갈등으로 고통의 시간을 맞이한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자유는 박탈당하고 아이들마저 시어머니에게 빼앗겨 모성을 삭제당한다.
아이들을 강한 주군으로 키우려는 모습에서는 당시 헝가리 독립 움직임으로 제국의 권위가 위협받는 상황이 엿보인다.


“새장 속 새처럼 살아갈 수는 없어/난 이제 내 삶을 원하는 대로 살래/내 인생은 나의 것/나의 주인은 나야/난 자유를 원해/자유” -'나는 나만의 것' 중에서


자유를 꿈꾸지만 엘리자벳에게 현실은 가혹하다.
유일한 버팀목인 남편을 어머니 소피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과정에서 소피의 계략으로 남편과 사이가 멀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가 자신에게 성병을 옮겼다는 생각에 수십 년 유랑의 길을 떠난다.
아버지와 정치·이념적으로 반목하던 아들의 자살도 고통에 무게를 더한다.


작품은 엘리자벳은 연민의 대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가장 사랑받았지만 가장 미움받기도 했던 그의 이면을 조명한다.
‘우유를 달라’는 민중의 분노가 불같이 이는 상황에서 욕조에 우유를 붓고 코냑과 날계란을 넣은 샴푸를 쓰는 모습은 그의 어두운 말로를 예고하는 듯하다.



19세기 성행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를 재현한 화려한 세트와 370여벌의 아름다운 의상은 극의 볼거리다.
그중 압권은 11m에 달하는 브릿지. 죽음을 태운 브릿지의 움직임은 아찔함을 자아내며 초월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섯명의 천사들과 죽음이 화려한 군무를 펼치는 ‘마지막 춤’ 장면은 극의 백미다.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아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엘리자벳’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
기존 이중 회전 무대와 리프트, 브리지 등의 무대 세트와 연출, 의상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공연은 11월13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이어진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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