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선호가 ‘슈룹’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진한 여운이 남는 계성대군의 서사였다.
지난 3월부터 11월 말까지 한 해를 꼬박 ‘슈룹’에 투자했다.
결과도 좋았다.
4일 최종회에서 ‘슈룹’은 전국 16.9%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1일 스포츠월드 사옥을 찾은 유선호는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우리 드라마가 잘 될 거 같았다.
생각보다 더 잘 돼서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만나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2017년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2로 처음 얼굴을 알린 유선호는 이후 SBS ‘복수가 돌아왔다’(2019) JTBC ‘언더커버’(2021), 카카오TV ‘우수무당 가두심’(2021), MBC ‘닥터로이어’(2022)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tvN ‘슈룹’을 만났다.
‘슈룹’은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과 후궁들의 궁중 분투기를 그렸다.
극 중 유선호는 딸 같이 살가운 아들이자 믿을 만한 중전의 4남 계성대군을 연기했다.
밀실에서 몰래 여장을 하는, 극을 뒤흔들만한 비밀을 가진 인물이었다.
유선호는 “오디션 대본을 보면서 계성의 감정 표현이 섬세하다고 느껴졌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캐릭터였다”고 했다.
그렇게 계성대군에 ‘꽂혀’ 감독을 졸랐다고. 계성대군에 낙점된 유선호는 “초반 계성대군의 정체성이 공개되며 ‘슈룹’이 시작됐다.
큰 사건이기에 부담감도 있었다.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첫 방송을 앞두고 나니 시작을 잘 알려야 할 텐데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 돌아봤다.
“계성대군은 이중성이 짙은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 느끼는 나랑 내가 살고있는 나랑은 다른 것 같더라고요. 처음 대본을 읽어봤을 때 생각했죠. 진짜 계성의 모습은 뭘까, 뭐가 되고 싶은걸까 고민하며 함께 만들어가기 시작했죠.”
첫 촬영은 지난 3월 폐전각 신. 화령(김혜수)과 보일 듯 말듯 숨바꼭질을 했다.
사회가 성 소수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대, 심지어 궁 안이었다.
그의 설명처럼 궁에서는 더욱 숨겨야 하는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곱게 걸린 여인의 저고리, 입술에 연지를 찍은 실루엣. 여인 분장을 한 유선호의 엔딩은 ‘슈룹’의 최대 반전이었다.
‘비밀을 숨긴 대군’이라는 인물소개가 있었지만, 좀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반전이었다.
유선호는 “숨기려 노력했는데 안 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건 아니”라면서 “걸음걸이도 변화를 줬다.
웃을 때 입을 가리는 등 조금씩 튀어나오는 디테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유선호는 ‘근손실’을 위해 격한 운동을 삼가고 유산소를 했다.
장발의 머리를 유지하기 힘들진 않았는지 묻자 곧바로 “막촬 끝나고 바로 자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다.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머리를 잘랐다”고 속 시원하게 답했다.
장발 덕에 붙임 머리도 더 예쁘게, 상투도 더 섬세하게 올릴 수 있었다.
여성스러움을 연기했던 터라 몸에 밴 습관들도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중간중간 물을 마시면서 자연스레 새끼손가락이 올라갔다.
무의식중에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새끼손가락을 세우는 등의 습관이 나와 웃음을 안겼다.
세자가 세상을 떠난 뒤 맏형의 몫을 해냈던 성남대군(문상민)은 무심한 듯 아우들을 챙겼다.
계성대군의 의복에 묻은 분가루를 톡 털어주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유선호는 “성남대군은 (계성대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상민이 형과도 이야기했는데, 아마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성남이 알고 있다는 걸 계성대군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짚었다.
계성대군의 정체성을 이해하고자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거나 관련 서적을 찾았다.
“계성은 여성성을 가졌고, 나는 여성에 대해 잘 모르니 호르몬에 관한 책도 찾아 읽었다.
정체성뿐 아니라 계성으로서 느끼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찾아봤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비밀을 들켰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계성대군을 연기하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 전에는 표현하는 것조차 불편한 나만의 싸움이었다면, 엄마가 내 편이 되니 더 편안했다”고 비교했다.
남들과 다른 계성대군의 마음을 알게 된 화령은 여인의 모습을 한 계성대군의 초상화를 선물한다.
“언제든 네 진짜 모습이 보고 싶거든. 그림을 펼쳐서 보라”는 화령의 말을 끝으로 화령은 계성대군과 같은 우산을 쓰고 다시 궁으로 향한다.
화령의 마음을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슈룹’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처마 밑에서 촬영한 이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한 유선호는 “그 신은 정말 너무 좋았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많이 느끼게 해주셨다.
너무 감사하고 아직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고 김혜수를 추억했다.
대선배 김혜수와의 감정신은 배우로서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그중에서도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항상 물어보고 상대 배우로서 존중해주는 김혜수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중요한 감정신을 찍을 때는 오히려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서로 감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서로 조심하지만 마음이 같다는 걸 느꼈죠.”
계성대군의 비밀이 밝혀지던 2, 3화. 유선호는 대본에 ‘엄마는 위대하다’라는 문구를 크게 써놨다.
그가 느낀 모성애에 관해 묻자 “(계성대군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만일 내가 화령의 입장이라 해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어쨌든 어머니는 이해 해준 거다.
너무 대단하고 그저 고맙더라. 사랑의 힘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계성대군은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며 부모와 형제를 떠나며 결말을 맺는다.
종영 전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유선호는 “계성이로서는 최고의 결말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궁을 떠난 계성은 진짜 ‘나답게’ 살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이지만 계성이 엄마(화령)처럼 살 것 같기도 해요. 누군가의 나무이자 우산이 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죠.”
‘언더커버’에서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승구를, ‘우수무당 가두심’에서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 현수를 연기했다.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슈룹’을 출발하면서도 캐릭터에 다가가는 게 우선이었다.
유선호는 “캐릭터에 이입하고 몰입하는 시청자에게 상처를 드리지 않는 게 첫 번째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지금까지는 캐릭터성이 짙은 장르물 위주의 작품을 선호했다면 이제 로맨스를 향한 욕심도 낸다.
“최애 로맨스작은 ‘노트북’”이라고 단번에 답한 유선호는 “‘노트북’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대여섯 번은 본 것 같다”며 설레했다.
인터뷰를 앞두고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KBS2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한 것. 연정훈, 김종민, 문세윤, 딘딘, 나인우와 함께 6인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막내로 합류하는 유선호는 맏형 연정훈과 24살 차다.
첫 촬영을 마친 그는 “재밌게 촬영하고 왔다.
형들이 반겨주시고 예뻐해 주신다.
어렸을 때부터 형, 누나들이 편했다”고 웃으며 “이제 한 번 촬영해서 잘 모르겠지만 운동도 좋아하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라 게임도 자신 있다.
어렸을 때부터 ‘1박 2일’의 시청자였는데 너무 영광이다.
여행하면서 게임도 하고 예쁜 풍경도 볼 수 있다니 너무 좋다”고 포부를 다졌다.
이제 본격적인 20대의 시작이다.
배우로서 소중한 작품을 남겼고, 대표적인 주말 예능 고정 멤버로의 활약도 기대하게 한다.
“10대는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지나온 것 같아요. 고난과 역경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잘, 재밌게 달려가고 싶어요. 나답게 헤쳐나가면서요.”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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