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개봉한 영화 ‘카트’는 홈플러스의 전신인 홈에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 해고 사태를 조명했다.
영화는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를 운영하던 이랜드그룹이 마트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규모 해고하면서 500여일간 파업 사태가 벌어진 실화를 모티브로 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홈에버는 2008년 삼성과 영국계 유통기업 테스코 합작법인인 홈플러스에 넘어갔다.
사모펀드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근로자 정리해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컸던 이유다.
대형마트 업계는 2013년 공휴일 의무휴업 시행 등 강화된 유통 규제와 소비의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직원수를 대폭 줄이며 비용 감축에 나섰지만, 홈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직원 감소폭이 적었다.
본지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대형마트 3사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마트 직원수가 5214명으로 가장 많이 감소했다.
롯데마트는 2716명, 홈플러스는 1145명이 줄어 가장 적었다.
이 기간 이마트는 창고형 대형마트를 확대하며 매장수가 150개에서 157개로 늘었고, 롯데마트는 113개에서 110개로 소폭 감소했다.
반면, 홈플러스는 140개에서 127개로 급감했다.
매장수를 가장 많이 줄인 홈플러스의 직원수 감축이 가장 적었던 것이다.
통상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한 한 뒤, 투자금을 상회하는 금액으로 되팔아 수익을 낸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MBK에 인수된 뒤 매장수를 줄이면서도 인력 감축에는 적극 나서지 않았다.
홈플러스 노조가 매장 매각 등 자산을 유동화할 때마다 거세게 반발한 탓이다.
그 결과 홈플러스는 매년 매출이 감소했는데, 인건비가 포함된 판매관리비는 계속 불어나 2021년부터 적자 전환했다.
홈플러스 유동성 악화의 원인으로 꼽히는 MBK의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에 따른 연간 이자비용 4000억원 가량이 반영되기 전부터 영업을 통해 현금을 만들어낼수 없는 구조였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가 지난달 기습적인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배경으로 이같은 노무 이슈가 꼽혔다.
실제 홈플러스 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임금 교섭에 돌입해 기업회생 직전인 지난달 24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잠정합의안에는 점포 매각 시 노사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조가 반대할 경우 매각이 불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기업회생 절차가 시작되면서 홈플러스는 부동산 자산 매각으로 각종 채권을 변제하고 대규모 인력감축과 구조조정 등의 경영 효율화 작업이 필수불가결해졌다.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은 오는 6월3일까지 제출 예정이다.
이미 홈플러스 노조는 14일부터 김병주 MBK 회장의 책임을 촉구하고 구조조정 계획이 없는 회생계획서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영화 '카트'는 도입부에서 주인공 선희(엄정아)가 "고객은 왕이다"를 선창하면서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잘된다"라고 외친다.
영화에서는 평범한 마트직원 선희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돌연 해고되는 억울함을 극대화한 대사다.
하지만 현실에선 극단적인 노사대결이 결국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소비 트랜드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뀌고 있는 만큼 노사가 상생방안을 논의할 시점이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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