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인공지능(AI)·반도체 산업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공급망, 인력, 기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AI 기술이 산업 전반을 빠르게 재편하는 가운데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연구 인력 등의 이점을 활용해 미국과 더욱 긴밀하게 공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산업협력 컨퍼런스'에서는 AI와 반도체 분야 협력 전략을 주제로 전문가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니징 디렉터는 "AI 혁명은 굉장히 초창기 단계"라며 "하이퍼스케일러(클라우드 서비스 공급업체)들이 투자를 해왔는데 수익을 내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가 AI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며 계속해서 개발되고 진화해야 한다"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하이퍼스케일러들과 협력해서 파운데이션 모델을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클라우드 공급업체와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김 디렉터의 설명이다.
그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한국에 소규모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싶어 한다"며 "한미 업체 간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미국은 연구 엔지니어가 부족한 반면, 한국은 제조 전문 엔지니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상호 협력 가능성이 높다고도 진단했다.

마틴 초르젬파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기술 보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자체 AI 모델 개발보다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을 통해 기존의 AI 업체들 협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틴 연구원은 "HBM은 AI GPU의 중요한 원동력"이라며 "챗GPT, 그록, 딥시크와 같은 글로벌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체적인 AI 모델을 갖추기 위해선 10만~20만개의 GPU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하며 그 분야는 경쟁이 치열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대신 기존의 AI 모델 위에 앱을 구축하는 방법은 이미 한국에서 생태계가 만들어진 분야"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AI 반도체 수출통제에서 예외 적용 대상이라는 점은 언급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에서 설계된 GPU에 규제를 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며 "한국이 미국 기반 AI모델을 기반으로 앱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 칩스법과 관련해 오히려 세액 공제의 측면에서 보조금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반도체 분야에서 관세 정책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에서 AI를 학습시키는 비용이 25~30%가량 증가할 뿐 아니라 해당 시설에 투입되는 모든 품목의 가격을 인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예 마이크로소프트 정책협력법무실 아시아 총괄대표도 "AI 분야에서 한국에 기회가 있다"며 한국에 자체 LMM(대규모언어모델) 개발과 AI 앱 개발에 집중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면서 사이버 보안과 인구 감소 문제에 대응할 자동화 솔루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보다 한미간 공조를 더욱 긴밀하게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한미 간 반도체, AI 분야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시기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지속되는 지정학적 긴장, 자연재해 이슈는 글로벌반도체 공급망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며 "한미 간 연대를 강화해 AI 반도체에 대한 설계부터 제조까지 안정적인 공급망 안정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 실장은 AI 반도체 시대로 넘어가면서 기술 혁신을 뒷받침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미 양국 반도체 전문 인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차세대 반도체 및 공정 기술에 대해 한미 양국 간 공동 연구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미국 내 한국 생산 공장, 연구개발(R&D) 센터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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