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등 국내 주요 테크기업들의 매출 대비 투자 비중이 메타 같은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적인 투자액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매출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턱없이 낮은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막을 올린 상황에서 초기투자가 성패를 좌우하는데, 해외 빅테크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한국금융연구원의 'AI 산업의 투자와 자본시장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대표 테크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매출 대비 투자액 비중은 각각 7.2%와 3.6%에 불과했다.
반면 이 기간 메타는 매출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7%에 달했다.
100만원 매출이 발생하면 77만원을 AI 강화에 투자한다는 얘기다.
구글은 54.5%, 아마존은 44.2%에 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매출의 44.1%를 투자했다.
미국 빅테크의 투자 비율이 국내 기업들보다 10배 이상 높은 셈이다.

미국 빅테크들의 투자액은 이미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타·구글·아마존·MS 4개사가 2023년 한 해 동안 투자한 액수는 1510억달러(약 219조원)에서 2024년 2460억달러(약 356조원)로 늘었다.
올해는 3200억달러(약 463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면서 비중도 높게 유지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액 대부분은 AI 데이터센터 구축 같은 인프라 확충을 위해 쓰인다.
FT는 "빅테크들은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이를 AI 반도체 생태계가 집약된 거점으로 만들어 거대언어모델(LLM) 선두 자리를 지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시티은행 역시 이들 투자금액의 약 80%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집중돼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슈타티스타는 지난해 "AI 시장은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0%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빅테크의 과감한 AI 투자 배경에는 기술 혁신과 시장 지배를 위한 장기 전략이 있다.
김두현 건국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미국 빅테크들은 기술 혁신을 목표로 투자받는 구조"라며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백조 원 단위의 투자가 이뤄지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와 해외 기업 간 투자비중이 큰 격차를 보이는 것에 대해 투자 환경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범용인공지능(AGI)과 같은 혁신적 기술을 목표로 하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기존 서비스를 개선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며 "네이버 같은 국내 기업은 자사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미국 기업들과 같은 전면적인 투자를 할 명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 기업들은 해외 진출 측면에서도 미국이나 중국 시장보다는 동남아시아나 중동 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유치할 컨소시엄이 한국에는 거의 없으며, 국내 기업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AI 개발에 필요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더라도 전력, 냉각 시스템 같은 기반시설이 부족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국내 테크기업의 투자 수준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코카콜라(4.3%)와 유사하다"며 "코카콜라는 안정화된 성숙기에서 최소한의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지만 '태동기'에 있는 AI 산업에서 이러한 소극적 투자 패턴은 장기적 경쟁력 확보에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가별 AI지수를 봐도 우리나라 AI 역량은 한참 떨어졌다.
영국 토터스미디어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국가별 AI 경쟁력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인 '글로벌 인공지능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27점으로 7위였다.
상위 15개국 중 1위 국가인 미국(100점)과 2위 국가인 중국(54점)이 월등히 앞섰다.
미·중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평균은 24점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국내 테크기업들은 AI투자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지난해 세종에 AI데이터센터를 세운데 이어 올해는 '온서비스 AI'를 내세워 AI경쟁력을 키우는데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를 지으면서 2023년에 투자 집행을 많이 했는데, 작년에 완공이 되면서 기저효과로 줄어든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데이터센터를 추가로 만들어야 하니까 관련 투자는 계속 집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