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중 무역 갈등이 겹쳐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돌파할 열쇠는 결국 기술이다.
기술은 기업의 생명줄이자 존재 가치다.
기업들이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CTO들은 단순히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시장을 분석해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아시아경제는 국내 주요 기업의 CTO들을 만나 각 산업이 주목하는 핵심 기술과 차별화 전략을 들어봤다.
주요 기업의 기술 전략을 통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가치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한다.
"NCM(니켈·코발트·망간)보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먼저 개발됐어요. 1990년대였는데 이내 시장에서 사라졌죠. 그 이유가 가격이 너무 비싸서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 LFP 가격이 낮아져 배터리 주도권을 가져가는 양상이에요. 하지만 앞으로는 경제형NCM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것으로 봅니다.
"

김창환 현대차 전동화에너지솔루션담당 부사장은 성능이 뛰어난 NCM 배터리 가격도 충분히 낮출 수 있고 LFP와 경쟁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분주하다.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차세대 배터리에 할애했다.
특히 경제형NCM에 무게를 실었다.
현대차가 지향하는 ‘좋은 성능에도 값이 저렴한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고민이 엿보였다.
경제형NCM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전화 한 통에서 출발했다.
해외 출장 중 업계 관계자가 전화로 "왜 NCM이 LFP만큼 싸지지 않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는 엔지니어 입장에서 당연히 니켈이나 코발트가 비싼 게 당연한 건데 왜 이런 질문을 할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LFP도 처음에는 비싸서 망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NCM도 더 싸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란 생각에 곧바로 친분이 있는 배터리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 생각을 나눴다고 한다.
김 부사장은 "그분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해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연구도 해보고 하면서 개발을 하게 됐다"며 "결국 기술은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결정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현대차도) 배터리 기술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형NCM은 값비싼 니켈 비중을 줄이는 대신 망간 비율을 높인 고전압 미드니켈 제품이다.
가격을 낮추면서도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개발 중이다.
2030년까지 현재 수준보다 20% 이상 에너지 밀도를 높일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경제형NCM 배터리 개발에 마음이 급하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적시에 시장에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개발과 상업화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전기차 충전 기술을 예로 들었다.
전기차 충전을 내연기관 주유와 비슷하게 만들려면 3~5분 이내에 이뤄야 한다.
배터리를 빠르게 충전하려면 충전 전압이나 출력을 높여야 한다.
현재 고속충전 출력은 350kW 수준이다.
자동차 업계는 배터리 용량 대비 충전 출력 비율을 나타내는 ‘C’ 값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80kWh 배터리 기준 1C는 80kW까지, 4C는 320kW까지 충전이 가능해진다.
현대차는 이미 이보다 2배 높은 8C(배터리 용량의 8배 출력으로 충전이 가능하다는 의미) 기술을 2년 전에 확보했다.
그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냐, 비싼 돈을 들여서 그걸 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통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기술 확보와 상업화는 전혀 다른 얘기"라고 설명했다.

김 부사장은 배터리 외에 수소 연료전지 개발도 총괄한다.
그는 "미래 자동차에서 엔진을 대체하는 것은 수소 연료전지가 될 것"이라며 "현재 엔진과 배터리가 공존하고 있지만 결국 배터리와 수소가 결합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현대차는 배터리나 수소 연료전지는 선행 개발부터 양산까지 버티컬(수직) 한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유기적으로 기술을 검증하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며 "만약 새로운 배터리가 시장에 나온다면 그걸 내놓은 기업은 현대차일 것이다"고 자신했다.
그가 당장 관심을 두는 사업은 올 상반기 출시를 앞둔 수소 연료전지 기반 신형 넥쏘다.
김 부사장은 "(신형 넥쏘는) 동력 성능이 훨씬 뛰어나고 배터리도 성능도 상향했다"면서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중점 사안으로는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50% 더 멀리 가야 한다"면서 "충전 시간 단축이나 가격하락에도 초점을 맞춰서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소 분야에서도 가장 경계 대상은 중국이다.
그는 "중국이 지난해 수소법을 만들면서 수소는 ‘에너지원’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이후 모든 산업 생태계가 수소를 가스가 아닌 에너지로 바라보고 있다"며 "올해 수소 산업 로드맵이 담긴 15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고 하는데 중국은 내수만으로도 경제성이 있는 규모를 갖출 수 있다 보니 주도권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경쟁할 수 있는 건 기술과 브랜드"라며 "많은 제조업에서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갔지만,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는 성공한 전략은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김 부사장은 배터리 시장의 최대 관심인 전고체 배터리의 등장에 대해 당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흔히 전고체 배터리를 꿈의 배터리라고 (기대를) 하는데 과연 2030년에 나올까…좀 어려울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동료, 후배 엔지니어에게도 "의욕이 넘치다 보면 작은 것 하나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일단 걷기 먼저하고 그다음에 뛰고, 이후에 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자들의 자기 기술 맹신도 경계했다.
그는 "과거 천동설과 지동설을 보면 팩트보단 모두가 믿는 게 맞는 거였다.
VHS와 베타 비디오처럼 베타가 더 작고 화질이 좋았지만 여러 업체가 VHS를 선택하면 그 기술이 맞는 게 됐다"며 "전동화 배터리도 특정 기술이 좋은데도 소비자는 언제든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불편하지만 그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엔지니어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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