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뿌 뉴스
IT/테크 입니다.
  • 북마크 아이콘

'품생품사' 정몽구의 품질 경영…현대차, 글로벌 1위 '안전한 車' 초석

편집자주[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3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혁신 비결을 정리한 콘텐츠입니다.
예로부터 자동차 산업을 주도한 국가가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제조업의 꽃인 자동차 산업은 기술 발전과 수출, 고용의 측면에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과거 현대차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였다면 이제는 산업을 이끄는 선두 주자(first mover)로 부상했습니다.
글로벌 취재 현장에서 느낀 현대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소를 그대로 전달해드립니다.
연재는 40회 이후 서적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newhub_2025031709433470218_1742172213.jpg

"미국서 무상 수리 기간은 10년 이상으로 해. 10년 동안 고장 나지 않을 차를 만들면 될 거 아니야?"(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현대자동차는 1999년 미국에서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다.
미국에서 '10년/10만 마일'의 엔진 무상보증수리 정책을 제시한 것. 당시 경쟁업체의 평균 보증 기간이 '2년/2만4000마일'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모험이었다.
자칫하면 천문학적인 보증수리비를 부담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결정은 오너가 아니면 누구도 결단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는 미국 시장에 대한 선전포고인 동시에 현대차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품질에 대한 긴장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목표가 높은 만큼 품질에 목숨을 걸었다.
아니, 걸어야만 했다.
일단 목표를 정해놓고 그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고방식은 그가 아버지를 통해 보고 배운 것이기도 했다.


이 정책을 내놓기 몇 달 전, 미국 출장길에 오른 정 명예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어렵사리 만들어 수출한 현대차가 미국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의 한 TV 토크쇼에서는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현대차의 구매 정책과 비교해 풍자할 정도였다.
품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며 어느새 현대차는 미국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 해 미국 시장 판매량도 역대 최저인 8만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 명예회장은 '10년/10만마일 엔진 무상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최부식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원은 '품질 신호로서 보증 기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2006)' 논문에서 현대차의 사례를 거론하며 "완전한 품질 정보가 없을 경우 소비자는 보증 제공 기간을 보고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도 보증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긴 보증을 품질에 대한 자신감으로 여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newhub_2017041115012233225_2.jpg

지금까지도 정 명예회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뚝심'과 '품질'이다.
그중에서도 품질은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7년까지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경영 가치다.
2000년대 이후 언론에 비친 그의 대부분의 사진은 작업복과 안전모를 쓰고 자동차를 세심하게 뜯어보고 있는 모습이다.
정 명예회장이 주재한 품질 회의에 참석했던 한 임원은 "정 회장의 현장경영은 절대 보여주기식이 아니다"라며 "실제 지적사항들을 보면 전문가이자 소비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내 매번 놀라웠다"고 회고했다.


'MK의 車' 카니발·그레이스…품질 경영의 시작

1998년 기아 인수 직후 정 명예회장이 가장 먼저 내린 지시는 기아 미니밴 카니발을 한남동 자택으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앞마당 뜰에 카니발을 세워놓고 밤낮으로 뜯어보고 또 살펴봤다.
동시에 김수중 기아 사장에게는 품질 회의를 위한 공간 확보를 요구했다.
김 사장은 기아 여의도 사옥 지하에 100여평의 공간을 마련하고 한쪽에는 회의실, 다른 한쪽에는 품질 검사를 위한 신차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한 달 후 이곳에서 첫 번째 기아 품질 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카니발 상품성 개선. 회의실에 들어선 정 명예회장은 분필로 카니발 차체 곳곳에 동그라미를 쳤다.
하얀 분필 가루가 떨어질 때마다 임원들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여기 표시한 부분, 모두 다시 고쳐봐." 정 명예회장은 그동안 수시로 들여다봤던 카니발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엔지니어들은 그의 지적사항을 바로 시정해 보고했다.
회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카니발은 2001년 신형 모델로 다시 출시됐다.
출시 첫해 국내에서 역대 최대 판매(7만4218대)를 기록했으며, 수출이 늘면서 글로벌 판매 10만대를 돌파했다.


정 명예회장의 품질경영을 상징하는 또 다른 차종은 바로 현대차의 소형 승합차 그레이스다.
이 역시 회장 취임 직후인 1999년의 일이다.
정 명예회장은 울산공장을 찾아 그레이스 품질 점검에 나섰다.
그는 모든 임직원이 보는 자리에서 슬라이딩 도어를 세차게 열고 닫았다.
스무 번 이상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시달린 슬라이딩 도어는 결국 레일에서 이탈했다.
이를 본 정 명예회장은 냉정한 얼굴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수년간 연구개발을 마치고 주문까지 받아놓은 그레이스 생산 공정은 그렇게 올스톱됐다.
이 일화는 정 명예회장의 품질경영 의지를 임직원에게 보여준 첫 사례로 평가된다.
처음부터 차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야 하며,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품질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newhub_2025031709511770250_1742172678.png
美 시장조사서 인정받은 현대차그룹

"현대차의 도요타와 가장 큰 차이점은 J.D.파워의 충고를 매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30년 가까이 현대차그룹에 몸담았던 조성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전 현대모비스 사장)의 말이다.
그는 1994년 현대차 연구원으로 입사해 현대차 미국기술연구소장, 연구·개발(R&D)본부 부본부장,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사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뼛속까지 '현대차 연구원'인 그는 현대차그룹 품질 경영 비결을 이같이 분석했다.
조 회장은 "경쟁사는 신차품질조사(IQS) 평가 결과가 나와도 지적 사항을 바로 그해에 반영하지는 않는다"며 "반면 현대차는 매년 연식변경 때마다 IQS에서 나온 소비자 피드백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보통 자동차의 신차 출시는 디자인과 엔진, 편의사양 등을 모두 바꾸는 완전변경(풀체인지), 외장 디자인만 변경하는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연도가 바뀔 때마다 사양을 조금씩 업데이트하는 연식변경이 있다.
경쟁사의 경우 IQS 평가를 2~3년 주기의 부분변경에 반영하거나 반영을 검토하는 정도다.
하지만 현대차는 매년 소비자 평가를 분석하고 연식변경에 적극 반영한다.
조 회장은 "현대차는 소비자 조사 결과를 두고 '이게 어떤 뜻이지? 왜 이렇게 대답했지? 왜 이게 불편하다고 했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비용과 인적자원 투입이 필요한 일인데도 항상 끊임없는 개선의 노력을 한다"고 강조했다.


newhub_2025031309561566278_1741827374.jpg

미국 시장조사기업 J.D.파워(J.D.Power)가 시행하는 신차품질조사(IQS·Initial Quality Study)는 1987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최고 권위의 자동차 품질 평가다.
소비자가 차량 구입 후 3개월 이내에 경험한 신차 품질을 바탕으로 조사가 이뤄지며, 100대당 불만 건수와 내용을 집계해 가중치를 매기고 점수로 환산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199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30년간 현대차와 기아, 도요타의 IQS 지수를 비교해보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현대차는 도요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품질 경영 기조를 선언한 지 5년만인 2004년, 드디어 처음으로 도요타를 제치게 된다.
현대차가 내부적으로 세운 목표를 3년이나 앞당긴 결과였다.
이때 미국 언론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회사의 지수는 2014년 이후 현대차의 우위로 굳혀진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1년간 현대차는 2022년 한해를 제외하고 줄곧 도요타보다 낮은 IQS를 나타냈다.


기아의 변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현대차에 인수되기 직전인 1998년 기아의 IQS는 30년 내 최고치인 362에 달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품질 경영 기조 아래 기아의 IQS는 2009년까지 가파르게 내려와 100대에 안착한다.
전체 브랜드 순위 기준으로 기아는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이후 최근까지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4년 IQS 조사에서 각각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15개 자동차 그룹사별로 평균 점수를 매기면 현대차그룹은 가장 낮은 평균 점수인 164점을 기록, 종합 평가 1위를 차지했다.


newhub_2020020709104445820_1581034244.jpg
‘품생품사’ 정몽구 회장의 경영 노하우

해외에서 손님이 오면 정 명예회장이 반드시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바로 현대차 양재 사옥 1층에 위치한 품질상황실이다.
이곳 입구 오른쪽 벽면에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2m에 달하는 대형 액자가 걸려있었다.
'J.D.파워의 충고'라는 제목의 액자인데, 2001년 J.D.파워 고위 관계자가 현대차를 방문했을 때 건넸던 품질에 대한 지적 5가지를 요약해 정리해 놓은 글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품기획과 설계·생산단계에 고객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고질적인 품질 문제는 모델이 바뀌어도 반복된다 ▲문제 해결의 대책이 불완전하다 ▲대당 문제 건수가 평균보다 2~3배 높다 ▲협력업체 품질 관리가 부족하다.


정 명예회장은 이같은 지적 사항을 하나하나 개선한다.
우선 2001년 계동에서 양재동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가장 잘 보이는 1층에 품질 회의·확보·상황실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곳에서 수시로 품질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구체적인 사안을 점검했다.
또한 품질상황실을 24시간 가동 체제로 전환해 해외 고객들의 불만 사항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했다.
불만 사항은 정리해 보고서로 만들게 하고 이를 전산에 올려 전 임직원이 볼 수 있도록 했다.
회장이 직접 보고서를 열람해 진행 상황을 챙기고, 심지어 임원들이 보고서를 읽지 않으면 이를 확인하라고 질책하기까지 했다.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생산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품질 패스제도 도입했다.


2002년에는 회장 직속 기구인 품질총괄본부를 발족하고 1000억원을 투자해 각국 생산공장에 엔진 전수검사 시스템을 설치했다.
협력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품질 5스타 제도'를 도입했다.
협력업체의 경영 체계, 납품 부품의 불량률, 클레임 발생 건수와 분담률 등을 점수화해 평가하는 제도다.
회장에 품질에 사활을 걸자 임직원의 최우선 순위도 자연스럽게 품질이 됐다.
이는 시차를 두고 상품성 개선에서 판매 확대로 이어졌다.
1999년 8만대 수준까지 떨어졌던 현대차의 미국 수출은 10배 이상 늘어 2004년 85만대까지 급증했으며, 이는 현대차그룹이 2009년 글로벌 5위를 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품질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몰입과 직접적인 참여는 구성원의 관심과 기업의 자원을 집중시켜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을 가속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고 평가했다.


newhub_2025031310425066462_1741830170.jpg
2025년, 현대차·기아 품질 경영의 현주소

현대차그룹의 품질경영은 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2025년 현재 현대차·기아의 품질을 총괄하고 있는 브라이언 라토프 글로벌 최고 안전·품질책임자(GCSQO·사장)는 "정의선 회장은 안전과 품질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라며 "최근까지도 정 회장을 수없이 만나면서 안전과 품질에 대한 도전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타협 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며 항상 중심에 고객을 두라는 말을 남겼다"고 언급했다.


라토프 사장이 현대차그룹에 합류하면서 새로운 안전·품질 모니터링 시스템도 도입됐다.
'안전을 위한 목소리(speak up for safety)'라는 프로그램이다.
일반 직원이나 해외 딜러들이 차를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안전이나 품질 관련 우려 사항이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라토프 사장에게 제보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의 품질 확보 노력은 안전성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가 시행한 충돌평가에서 12개의 차종이 우수한 안전성을 입증하는 상위 등급(TSP 및 TSP+)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같은 성적은 글로벌 자동차 그룹 중 1위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뉴스 스크랩을 하면 자유게시판 또는 정치자유게시판에 게시글이 등록됩니다. 스크랩하기 >

0
추천하기 다른의견 0
|
첨부파일
  • newhub_2025031709433470218_1742172213.jpg
  • newhub_2017041115012233225_2.jpg
  • newhub_2025031709511770250_1742172678.png
  • newhub_2025031309561566278_1741827374.jpg
  • newhub_2020020709104445820_1581034244.jpg
  • newhub_2025031310425066462_1741830170.jpg
  • 알림 욕설, 상처 줄 수 있는 악플은 삼가주세요.
<html>
�좎럥큔�얜��쇿뜝占�
HTML�좎럥梨룟퐲占�
亦껋꼶梨띰옙怨�돦占쎌슜��
짤방 사진  
△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