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홀릭] 글로벌 무역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발 관세 폭등 사태를 두고 재계가 심각한 고민에 빠진 가운데 현실로 다가온 무역 장벽을 이길 다양한 방안들이 준비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당장 재계는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직간접적인 생산 기지를 둔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역협회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당장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관세가 적용된다면 올해 우리나라 총수출은 지난해 대비 2억2000만달러(3211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LG그룹도 이같은 관세 파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미 LG그룹은 가전, 배터리 등 주요 생산 거점을 캐나다와 멕시코에 둔 만큼 미국의 관세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멕시코는 북미와 중남비를 잇는 허브 기지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그동안 LG전자의 북미 수출전략기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멕시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동 전략
이에 따라 그룹은 멕시코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장 LG전자는 멕시코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무려 800만대가 넘는 가전제품을 멕시코에서 생산해 왔기에 파장과 영향을 고민하는 중이다.
지금 상황에서 멕시코에 관세가 부과되면 LG전자의 북미 시장 공략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당장 수출가 상승으로 이어져 트럼프가 원하는 미국기업 시장 지배력 강화가 일어나게 되고 제너럴일렉트릭(GE), 월풀 등 미국 현지 업체가 시장점유율을 크게 올려놓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4분기 결과가 채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의 분석을 보면 2024년 3분기 기준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LG전자의 점유율은 21.1%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앞서가고 있기에 본격적인 대응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흥분하거나 급하게 서둘지 말고 차분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만든 배터리 공장을 전략 허브로 갖고 있다. 전기차 캐즘으로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올 하반기(7∼12월) 본격적인 생산을 앞두고 있지만 다분히 어려움이 예상된다.
LG이노텍의 경우는 멕시코 현지 생산 전략을 지속하면서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갈 방침이다. 당장 미국으로 기지를 옮길 필요는 없다. 워낙 미국 인건비가 비싸 옮겨도 그만한 이점을 거두기 어렵다.
LG이노텍은 멕시코 산후안델리오에 위치한 3000평 규모 공장에서 모터, 센서, 차량용 카메라 모듈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2023년 인근에 3만평 규모의 부지를 추가 매입하고, 지난해부터 현지 시설 증설에 나서고 있다. 올해 하반기 준공 예정. 그럼에도 트럼프발 관세 압박은 신중히 헤쳐나가야 할 위협요인이다.
문혁수 대표는 지난 1월 CES 2025 기간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장 변화를 면밀히 보고 있다면서 “미국 생산 비용이 워낙 높기 때문에 멕시코에 25% 관세를 매겨도 멕시코가 더 싸기 때문에 관세를 덜 내는 방향으로 가능할지 시장 상황을 살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룹은 멕시코 등에서 무조건 생산기지를 빼내 옮겨가는 것은 무리이고 리스크도 크다고 판단한다. 갑에서 빼내 을로 채우는 직접적 변화 전략보다는 제품을 다양한 곳에서 생산하는 ‘스윙 생산’ 등으로 유도해 가겠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스윙생산은 제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략적인 선택으로, 시장 상황에 맞춰가며 일정한 주기마다 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을 취하거나 생산기지별로 출하량을 우회하면서 변화시켜 수출 대상 지역에 유연하게 대응해 가는 방법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인도 시장에 집중하는 그룹 전략이다.
잘 되는 곳에 선택과 집중-인도 시장 공략
LG그룹은 미주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1996년 시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도에 첫 발을 내디뎠는데 주요 계열사들이 인도에 진출해 있다. 1996년 LG화학이 인도 현지에 법인을 설립했고 1997년 LG전자가 인도에 단독 투자 생산법인을 설립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LG전자가 1997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에 첫 공장을 설립한 후, 2006년에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 두 번째 공장을 세웠고 현재는 노이다와 푸네에 각각 공장을 운영하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 다양한 가전 제품을 생산하며 시장 점유율울 높여가고 있다.
또 인도의 우수 인력을 흡수하면서 현지화해 가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벵갈루루에 LG 소프트 인디아를 글로벌 R&D허브로 구축해 AI(인공지능)기술을 비롯한 가전, 전장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그 사례다.
LG전자는 인도 시장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에 세 번째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LG전자는 인도 가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국민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LG전자 인도법인은 매출이 2018년 2조4703억원에서 2023년 3조3900억원으로 5년 사이 33.6% 상승했으며 지난해에는 매출 3조7910억원, 순이익 3318억원을 달성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 인도를 찾아 인도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G그룹은 인도의 넘쳐나는 내수 시장과 우수 인력 풀을 기회의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도의 IT 기술인력은 넘치고 넘칠 정도로 풍부하다. 인도의 IT 산업은 GDP의 7%를 차지하는 핵심 성장 동력으로 한국과 동반 성장이 가능한 분야이다. 인도는 현재 SW 개발자 500만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약 100만명의 공대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막강한 IT 인재 풀을 가지고 있고 한국 일본 등에서도 인도 유학생들의 실력은 인정받을 정도이다. 이에 구글, MS,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R&D 거점으로 인도를 붙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유다.
이를 통해 한-인도 협력체제를 갖추면서 북미시장 위주의 전략을 벗어나 인도 진출 30주년을 맞아 중동 아프리카까지 뻗어나가는 사업 확장에 나서려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구 회장이 첫 해외 출장지로 인도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멕시코나 캐나다 생산기지의 어려움을 극복해 가려는 경영진의 고심을 드러낸 것이다
현지에서 구 회장은 연구개발(R&D)·생산·유통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반의 경쟁력을 점검하고 현지 상황과 무역 조건을 깊이 살핀 것으로 전해진다.
구 회장의 다음 출장지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였다. 구 회장은 이들 국가로 이동해 중동·아프리카 지역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중장기 사업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두바이에서는 현지 가전 유통 전문 매장을 찾아 시장 트렌드를 살펴보고 LG전자 제품의 판매 현황과 경쟁력을 점검했다.
그룹은 1982년 두바이에 LG전자 지점을 설립한 후 현재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LG전자를 중심으로 판매, 생산, 서비스 등을 맡고 있는 12개 법인을 운영하면서 현지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가는 한편 두바이의 프리미엄 고객에게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구광모 회장은 중동 아프리카 시장 공략에 대해 쉽지는 않으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면서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복잡하고 어려운 시장이지만, 지금부터 진입장벽을 쌓고 핵심역량을 준비해 미래 성장의 핵심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가에선 LG그룹의 유연한 수출 전략이 트럼프 2.0 시대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려는 그룹의 전사적 노력이 올 한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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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을 찾아 에어컨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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