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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의 酒저리]금풍양조, 백년의 시간이 쌓인 그리고 쌓여갈 공간
분류: 뽐뿌뉴스
이름: 뽐뿌뉴스


등록일: 2023-04-01 07:30
조회수: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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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본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하구에 자리한 까닭으로 해구(海口) 또는 혈구(穴口)로 불렸다.
강화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건 고려 태조 23년(940년)으로 ‘여러 강을 끼고 있는 아랫고을’이라고 하여 강하(江下)라고 부르다가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으로 강화(江華)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강화라는 이름의 역사는 우리 땅 간척의 역사이기도 하다.
강화는 주변 하천이 운반하는 막대한 양의 토사가 인근 수역에 퇴적되면서 자연스레 갯벌이 발달했다.
갯벌은 고려 중기까지 거의 개간되지 않고 저습지로 남아있었지만, 몽골의 침입 이후 강화 천도를 계기로 간척이 시작되었다.
간척사업은 한때 중단되기도 했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재개돼 광대한 갯벌을 농토로 바꿔놓았다.
그렇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간척된 땅이 오늘날 강화 땅의 3분의 1에 달한다.


강화는 간척을 통해 수백 년의 시간을 거치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과거의 강화와 오늘의 강화는 다른 시간 속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강화다.
시간이 쌓아 올린 간척의 땅 강화에는 100년이란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린 양조장이 있다.
100년의 세월을 쌓아 올린 공간에서 다음 100년을 쌓아 올릴 준비를 하는 곳, '금풍양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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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묻힐 뻔한 이름 다시 끄집어내다

금풍양조가 처음 문을 연 건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고(故) 김학제 대표는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터를 잡고 재물을 의미하는 ‘금(金)’과 풍년을 뜻하는 ‘풍(豊)’을 더해 '금풍(金豊)'이라 이름 짓고 양조장 운영을 시작한다.
이후 1969년 현 양태석 대표의 조부인 양환탁 씨가 양조장을 인수했고, 아들인 양재형 씨를 거쳐 손자인 양태석 대표까지 3대에 걸쳐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태석 대표의 할아버지 양환탁 씨는 정미업부터 운수사업까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던 확장성 있는 사업가였다.
그런 그의 눈에 당시로선 규모 있는 사업이었던 양조업이 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인수한 양조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은 그의 아들인 양재형 씨였다.
양 씨는 같은 자리에서 50년 가까이 막걸리를 빚으며 100년 가까운 양조장 역사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막걸리 빚는 일에 평생을 몰두했지만, 어느덧 막걸리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소주와 맥주 등 경쟁 주종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지만 막걸리의 주요 소비층이던 농촌지역 인구는 끝없이 감소했다.
그렇게 금풍양조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다른 사업자에게 임대해 ‘강화온수양조장’으로 운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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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 묻힐 뻔한 금풍양조의 이름을 다시 끄집어낸 건 현 대표인 양태석 씨였다.
양 대표는 어려서부터 막연하지만, 양조장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양조인의 길을 걸을 것 같았던 그는 대학 졸업 무렵 마케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발 들인 마케팅 분야에서 각종 기업과 브랜드의 론칭·전시 업무 등을 맡으며 쌓아 올린 시간이 십수 년이었다.


양조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던 그가 다시 양조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8년 무렵이었다.
그 사이 마케팅 에이전시를 운영하게 된 그는 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특화 분야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양조장이었다.
양 대표는 “주류 브랜드의 론칭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보면서 주류 전문 마케팅 에이전시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며 “그 시작으로 저희 양조장에 제 마케팅 경험치를 적용하면 의미 있는 이야기가 담긴 공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조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양 대표가 처음부터 양조에까지 뛰어들 생각은 아니었다.
양조는 기존 양조장을 임차한 사업자들에게 맡기고, 양 대표는 양조장 브랜딩 등 마케팅을 담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양측의 방향성이 달라 협의 끝에 결별하기로 합의했고, 양 대표는 양조까지 담당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당시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 업계의 분위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했다”며 “특히 지역특산주는 온라인 판매까지 가능하니 지방에서도 충분히 게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금풍양조의 문이 다시금 열린 것이 2020년 2월이었다.


사실 금풍양조는 양 대표에게도 낯선 이름이었다.
처음 시작은 금풍양조였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치며 정부 방침에 의해 강화 지역 양조장은 두 곳으로 통폐합됐고, 그 과정에서 금풍양조도 강화 남부를 담당하는 ‘강화 제2 합동주조장’이란 건조한 이름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금풍양조라는 이름을 제안한 건 양 대표의 아버지였다.
양 대표는 “처음에는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분위기에 맞지 않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지만 양조장에 원래 이름을 되찾아주자는 아버지의 취지가 와 닿았다”며 “지금은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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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도 고급화 시대”…무농약 친환경 쌀로 빚은 탁주

금풍양조의 간판을 다시 한번 걸어달고 야심 차게 문을 열었지만 정작 양조장에는 술이 없었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양조장의 전통과 유산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 술이 필요했다.
양 대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버지도 은퇴한 지 오래셨고, 그 시절 술을 그대로 재현할 생각도 없었다.


양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취미 삼아 막걸리를 담아본 적은 제법 있었지만, 상업 양조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며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건 물론이고, 주류 업계로 진출한 대학 선·후배들의 도움, 다양한 컨설팅과 업계 분들의 조언 등을 토대로 새로운 술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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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탄생한 술이 ‘금풍막걸리’다.
2021년 5월 첫선을 보인 금풍막걸리는 강화도 친환경 무농약 쌀과 온수리 지하수로 빚은 밑술에 덧술을 해 만든 이양주다.
탄산이 없어 부드럽고 깔끔하며, 감미료를 넣지 않아 달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양 대표의 할아버지가 양조장을 인수한 1969년을 기념해 6.9도(%)로 맞췄다.


양 대표는 “시대가 변화한 만큼 막걸리에도 고급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무농약 친환경 쌀 같은 최고급 원료를 사용하고 감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며 “술병과 라벨 등 패키지도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금풍막걸리는 페트병을 사용한 처음이자 마지막 막걸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작년에는 프리미엄 막걸리 ‘금학탁주’를 선보였다.
알코올 도수 9.6도인 ‘블랙’, 강화도 특산물인 인삼을 넣은 9.6도 ‘그린’, 13도 ‘골드’ 등 3종으로 선보인 금학탁주는 기존 페트병이 아닌 검은 유리병에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금빛 라벨을 더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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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양 대표는 아직 유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아 금풍양조의 술들은 접하기가 꽤나 어려운 편이다.
대부분 양조장 현장에서만 판매하고 일부 온라인과 전통주 전문점 등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술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양조장의 브랜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통채널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게 양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양조장이 유명해지면 그곳에서 만드는 술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어날 것”이라며 “느리지만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이틀 안에 승부를 볼 생각으로 양조업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양 대표는 “양조장을 방문하신 분들에게 양조장의 역사와 술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문화공간으로서 양조장을 경험하시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재방문율과 재구매율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며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계획한 일들을 풀어나간다면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목표로 했던 일들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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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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