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안전자산인 금(金) 대신 친환경 에너지에 쓰이는 백금(플래티넘)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로 금의 인기는 시들해진 반면 각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친환경 산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백금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런던금속거래소에 따르면 백금은 이날 트로이온스(31.1g)당 970달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백금 가격이 트로이온스당 964.80달러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는데 5달러 이상 오른 것이다. 특히 백금은 이달에만 14% 오르는 등 가격 상승세를 보였다.
백금 가격 상승은 '부활'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10년 전까지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용 촉매로 사용되면서 주목받았지만 이후 자동차업계가 더 저렴한 촉매로 팔라듐을 사용하면서 백금은 설자리를 잃었다.
세계백금투자협회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31만온스, 79만5000온스의 공급 과잉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초만 해도 백금 가격은 지지부진했다. 코로나19로 신차 생산이 줄면서 백금 수요도 덩달아 감소해 공급 과잉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전 세계가 친환경 에너지에 주력하면서 백금이 촉매로 주목받기 시작해 공급 부족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가 재생에너지에 무게를 두면서 백금은 더욱 주목받는 모양새다. 예를 들어 수소 기술에서 백금은 필수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촉매 등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중국 모두 탄소중립 목표 등을 밝히면서 수소 발전 관련 투자를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수소전지차에 쓰이는 백금 수요는 디젤차보다 4배 이상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게다가 배기가스 정화용 촉매의 경우에는 팔라듐도 가능하지만 수소 기술에서는 백금만 촉매로 이용할 수 있다.
반면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백금은 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됐는데 올해 남아공 일대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내려진 봉쇄 조치 여파로 생산 규모가 대폭 줄었다. 세계백금투자협회는 올해 백금 수요가 공급보다 120만온스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WSJ는 코로나19 사태로 백금 수급 상황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백금이 대세 상승세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계 자산운용사 애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트의 스티븐 던 상장지수펀드(ETF) 헤드는 "백금은 이제 장기적 가격 상승세의 초반부에 있다"고 내다봤다.
백금 가격의 상승세는 금 가격과 대비된다. 이날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1784달러를 기록해 올해 7월 이래로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 8월에는 트로이온스당 2050.2달러(8월5일)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달에만 6%가량 하락했다.
WSJ는 전날 금 가격 하락세는 투자자들이 점차 백금 등 가격 상승 여력이 큰 상품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보도했다.
상품시장 정보 제공업체 CRU의 키릴 키릴렌코 애널리스트는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그린 에너지에 2조달러(약 2209조원)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최근 수주간 백금 가격이 상승세를 보였다"며 "백금은 투자 수요 외에 산업적 용도로도 활용됐는데,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관련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되면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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