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천주교계에 따르면 프랑스 출신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레 뒤퐁) 주교가 10일 선종했다.
향년 9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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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선종한 두봉 레나도(프랑스명 르레 뒤퐁) 주교. 연합뉴스 |
두봉 주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으며 마지막 성사(聖事)를 하고서 안동교구장인 권혁주 주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했다고 안동교구 관계자는 전했다.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21세에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이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53년 6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954년 12월 한국에 파견돼 대전 대흥동천주교회에서 10년간 보좌로 사목했으며 대전교구 학생회 지도신부, 가톨릭 노동청년회 지도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등을 지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고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취임해 약 21년간 교구를 이끌다 1990년 12월 퇴임했다.
두봉 주교는 '가난한 교회'를 내걸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힘썼다.
그가 안동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73년 경북 영주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의원이 개원했고 1978년 12월에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가 창립했다.
두봉 주교는 농민의 권익 보호도 중시했는데 1978년 발생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천주교 신자이며 농민회 영양군 청기 분회장이던 오원춘 씨가 '영양군이 감자 경작을 권장했지만, 종자가 불량해 싹이 나지 않는다'며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항의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당국이 농민들의 요구를 묵살하자 안동교구 사제단이 나서 피해를 보상받게 됐는데 이후 오씨가 괴한들에게 납치·폭행당한 것이다.
사제들이 진상조사를 추진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가톨릭이 대립하는 시국 사건으로 번졌다.
당시 외무부는 두봉 주교에게 자진 출국 명령까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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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중인 두봉 주교. 연합뉴스 |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만일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가 두봉 주교를 추방하면 다른 사람을 안동교구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리해 두봉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교황을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10·26 사건이 벌어져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렸다.
두봉 주교는 2022년초 인기 TV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해서 소박하면서도 성스러운 일상을 소개해 큰 감동을 준 바 있다.
고인은 "나는 26살 때 한국에 왔고, 어느새 70년이 되었어요. 김치를 더 많이 먹었고, 밥을 더 많이 먹었고, 한국에 더 오래 살았어요"라며 "전쟁이 끝난 나라, 어려운 나라, 누군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고향에서 먼 이국에 온 까닭을 설명했다.
군사정부와 불편했던 관계에 대해서도 "내가 농민들을 도우니까, 정부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했어요. 그래도 나는 그들 편을 들 수밖에 없었어요"라며 "교황님께 말씀드렸어요. 이 나라의 사정을. 교황님은 교회가 노동자와 농민의 편에 서야 한다고 하셨죠"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참으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제 삶의 큰 기쁨입니다.
"
두봉 주교는 2019년 특별귀화자로 선정돼 국적 증서를 받으면서 한국·프랑스 이중국적자가 됐다.
근래에는 성당을 겸하는 의성의 한 공소(公所)에서 생활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미사를 주례하거나 멀리서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해주며 소일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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