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의 빈틈을 파고든 식자재마트가 몇 년 새 몸집을 키우면서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식자재마트가 상대적으로 우월한 자금력을 앞세워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다.
전문가들은 식자재마트의 몸집이 이미 대형마트 수준에 이르렀다며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식자재마트 3사(푸디스트·장보고식자재마트·세계로마트)의 매출은 지난 10년간 2~3배가량 뛰었다.
장보고식자재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4502억원으로 10년 전인 2014년(1818억원)과 비교해 147.6% 늘었고, 같은 기간 세계로마트는 742억원에서 1249억원으로 68.3% 불어났다.
온라인 쇼핑 활성화와 불경기로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의 실적이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식자재마트란 식료품을 취급하는 1000㎡(302평) 이상 3000㎡(907평) 미만의 매장을 말한다.
태생은 식당 사업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식자재를 공급하기 위한 유통매장이었으나, 산지 직송과 저렴한 가격 등을 내세워 몸집을 불리더니 현재는 대형마트를 위협할 정도의 유통매장 형태로 자리 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업자들은 최소 5~6년 전부터 식자재마트의 경쟁력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며 "현재는 자본력, 매장 면적, 주차장 설비 등 모든 측면에서 사실상 대형마트에 가깝다"고 했다.

문제는 식자재마트의 급성장으로 인근 상인은 물론 유통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다.
식자재마트는 대기업이 아닌 지역 중소형 도매업체와 계약해 육류와 해산물 등 식자재를 대량으로 납품받는 방식으로 소비자가격을 낮췄다.
처음엔 중소 도매업자와 상생하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었으나, 식자재마트가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점차 공격적인 가격 마케팅을 펼치며 상황이 반전됐다.
일명 '미끼 상품'(가판대에 물건을 쌓아 놓고 시중보다 최대 20% 이상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품), '월별 할인' 등이 대표적이다.
유통 소상공인들은 몇 년 새 대형마트들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이 확대되고 납품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식자재마트의 무리한 납품 단가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계란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여모씨(54)는 "미국 수출이 늘고 국내 계란 공급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도 식자재 마트에선 계란 한 판을 산지 가격보다 낮은 2890원에 판매하고 있다"며 "계란은 오래 보관할 수도 없고 납품처를 찾지 못하면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도 납품에 응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근 상인들의 근심도 깊어지긴 마찬가지다.
식자재마트는 매장 면적이 3000㎡ 미만이고 매출이 1000억원을 초과하지 않아 현행 유통산업발전법과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에 월 2회 휴무, 심야영업 금지 등과 관계없이 연중무휴로 24시간 영업할 수 있고 거래처와 표준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의무도 없다.
이에 식자재마트는 최근 쿠팡·컬리처럼 새벽 배송으로도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전통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김모씨(65)는 "식자재마트가 들어선 반경 5㎞ 이내에선 과일이든 채소든 계란이든 전부 안 나간다"고 했다.
소상공인들도 집단으로 식자재마트 규제에 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소상공인연합회는 더불어민주당 전국 소상공인위원회와 함께 식자재마트 규제에 관한 토론회를 열고 법 개정을 촉구했다.
강종성 한국계란산업협회장은 "식자재마트가 미끼상품으로 상시적인 세일에 나서며 원가 이하의 납품을 강요하고 있다"며 "수억 원 상당의 입점비 강요, 배타적 납품 강요, 매장관계자들의 금품 요구 등 온갖 갑질로 납품업자를 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식자재마트 규제법안은 21대 국회에서 22건, 22대 국회에서 15건이 발의됐으나 아직 답보 상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식자재마트는 이미 자본력과 판매력 등에서 대형마트 수준에 이르렀는데 규제가 전무하다"며 "이렇게 몸집을 키운 식자재마트가 인근 상인들과 유통 업자들을 폐업 위기로 몰고 시장을 과점할 경우, 소비자가격은 결국 정상화될 것이고 추후엔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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