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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장기가 끝나면서 물러나는 임원들의 경험을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였다.
국내에 공식적으로 이 제도가 생긴 건 1988년 말 삼성그룹이 시초였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취임 1년 뒤 도입했다고 한다.
1990년대 현대그룹, 선경그룹 등으로 확산하면서 기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퇴직 임원들에게는 통상 1∼2년, 임원 재직 당시 급여의 50∼80%와 공용 사무실을 제공했다.
대표이사 출신 등 일부 핵심 임원은 개인 사무실과 차량과 기사, 비서를 주고 예우 기간도 더 길게 해줬다.
준비되지 않은 퇴임에 따른 심리적·금전적 충격을 덜어주고 대외적으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혜택을 준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기밀을 유지하고 경쟁사에 인재를 뺏기지 않으려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었다.
‘의리’를 그룹 정신으로 강조해온 한화의 일부 계열사가 최근 경영 악화에 따른 비용 절감을 이유로 퇴직 임원 예우 제도를 전격 폐지하자 임직원들이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은 유통·로봇 등 일부 계열사에 한해 적용되고 있지만, 이런 기조가 그룹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삼성은 ‘반도체 불황’을 겪던 2023년 말 최고 예우인 ‘상근 고문’ 제도를 많이 축소한 데 이어, 최근에도 퇴직 임원 예우 기간을 기존 2년에서 ‘기본 1년’ 혹은 ‘1+1년’으로 줄이는 추세다.
SK도 퇴직 임원 공용 사무실을 축소했다.
전에는 임원이 많지 않아 퇴임 후에도 최고 예우가 가능했는데, 임원 수가 크게 늘면서 이를 동일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진 게 이유로 꼽힌다.
또 퇴직 임원 예우는 ‘입단속’ 차원도 있었는데, 회사 경영이 투명해지면서 이런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경기 침체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에서 고문이 사라지는 게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는데 임원 승진을 꺼리는 중간 간부가 늘지 않을지….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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