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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 어머니의 본성 vs 인간으로서의 이성… 불편한 질문 앞에 선 母性의 초상

국립극단 해외 신작 시리즈 ‘그의 어머니’
하룻밤 여학생 세 명을 강간한 아들
가해자·판결·처벌에 초점 두지 않고
세상 비난 향하는 범죄자 母에 초점
윤리·책임·침묵 사이의 균열 풀어내
배우 김선영 가해자 어머니역 연기
“증오와 뒤엉킨 모성 담아내려 노력”


극한상황에서 모성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일하면서 두 아들을 키운 여성의 바쁜 아침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초등학생인 둘째는 집밖을 나가기 싫어하고 첫째는 2층 자기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집안을 감싼 불길한 분위기 실체는 잠시 후 방문한 이웃친구와 언쟁에서 드러난다.
“네 아들은 하룻밤에 여학생 세 명을 강간했어.”

2018년 전미도가 열연했던 ‘오슬로’로 시작해서 2021∼22년 ‘엔젤스 인 아메리카1, 2’ 등의 화제작을 선보여 온 국립극단의 해외 신작 시리즈. 올해의 선택은 캐나다·영국에서 활동하는 극작가 에반 레이시의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다.
연극 ‘그의 어머니’에서 주인공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이 학교 가기 싫어하는 둘째아들을 등교시키는 장면을 19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연습실에서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는데 무대는 가해자나 피해자, 판결이나 처벌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의 비난이 집요하게 향하는 존재인 범죄자의 어머니에게 초점을 맞춘다.
‘범죄자 가족’이라는 가장 어두운 위치에 선 ‘엄마’의 시선으로 윤리와 본능, 책임과 침묵 사이의 균열을 응시한다.
법과 도덕,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균열이 벌어지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본능적으로 잔혹하거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사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감당해야 하는 인간 내면의 절망과 고립, 끝내 부인할 수 없는 모성의 형상이다.
배우 김선영이 연기하는 주인공 브렌다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신의 아들이 조금이라도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백방으로 애쓴다.
아들이 받은 상장을 재판부에 제출하고 사건 당시 기숙사 방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의 편린도 주워 담는다.
당연하게도 세상 시선은 차갑고 집밖에 모인 취재진은 승냥이떼 같다.
“내 집 앞에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들! 그냥 굶주린 짐승 같은 것들. 도대체 뭘 원하는데, 뭘 던져줘야 사라질 거냐고?”

가해자 가족을 무대에 올리는 문제작을 만들 이로 국립극단은 극단 산수유 류주연 연출을 선택했다.
‘류주연 연출이 아니면 안 된다.
김선영 배우가 아니면 이 역할을 떠올릴 수 없었다’는 게 국립극단 설명이다.
보는 이도 숨막힐 정도로 불편한 내용이니 대본을 받아든 연출이나 배우에게도 여느 작품보다 강도 높은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연극 ‘그의 어머니’를 소개하고 있는 연출 류주연(왼쪽)과 배우 김선영. 연합뉴스
두 연극인이 찾아낸 화두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였다.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받아온 류 연출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가해자를 다룬 작품이 늘어난 건 그만큼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며 생긴 현상”이라며 “예술이라는 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어떤 지점까지 쫓아가서 그것을 파헤쳐 보고자 하는 정신력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선영 배우 역시 아들에게 “손톱만큼의 감정이라도 있다면 그게 뭔지 알아? 증오. 너는 그것 빼고 모든 걸 나한테서 강간해서 빼앗아 갔어”라고 외쳐야 하는 과정이 끝까지 파헤치고 찾아가는 배우의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가혹한 모성을 연기하면서 겪은 감정 변화에 대해 김선영은 “이 다섯줄을 이해하기 위해 한 달 반을 연습했는데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는 엄마인데 아무리 너를 증오한다고 말해도 이 안에는 엄마의 절망과 슬픔, 비참함, 숨겨진 애정이 같이 있어야 하더라”며 증오 속에 뒤엉킨 모성과 인간성의 복합적인 결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1995년 연극 ‘연극이 끝난 후에’로 데뷔한 김선영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영화 ‘세 자매’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에서 친근한 이미지를 쌓으며 각종 여우 조연상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극단 ‘나베’ 대표이기도 하다.
연극 무대는 2018년 ‘낫심’ 이후 7년 만이다.
지난해 국립극단 출연 제안이 오자마자 수락했다는 김선영은 “드라마·영화를 계속하다 보니, ‘내가 이러다 바닥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연기 경력 30년을 꽉 채운 연기파 배우는 거듭 ‘공부’를 강조했다.
김선영은 “무대를 하면 정말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작품을 읽었는데 분량이 어마무시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 분량이어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무대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이 작품 안에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말씀드릴 수 없어요.”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4월 2일부터 19일까지.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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