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뿌 뉴스
지역 입니다.
  • 북마크 아이콘

[삶과문화] 도시 마을

홍매화 가득한 순천 탐매마을
봄꽃 다투어 피니 골목이 북적
알록달록 꽃길에 환호하다가도
‘여순사건’의 상흔 떠올리게 돼


순천 구도심에 ‘탐매마을’이 있다.
탐매(探梅)라는 한자말은 순천에 살게 되면서 새로 배웠다.
이 예스러운 말은 매화를 찾아서 구경하는 걸 이른다.

탐매마을 오래된 골목을 따라 홍매화 가로수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 홍매화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핀다고 한다.
꽃이 만개하는 3월 초에는 마을 축제도 열린다.
마을 주민이 되어 4년째 살고 있다.
홍매화가 피면 평소 한산했던 골목이 셀카봉을 든 탐매객들로 북적인다.
나도 꽃소식을 핑계 삼아 평소 소원했던 지인들에게 사진과 함께 안부 문자를 보내곤 한다.
newhub_20250213519369.jpg
전성태 교수 소설가·국립순천대교수
올해는 일조량이 적고 늦추위가 길어지면서 예년보다 개화가 늦었다.
며칠간 날이 푹하더니 홍매화가 터져서 골목이 환해졌다.
어수선한 시국에 잔뜩 움츠려 지내던 시민들이 부쩍 많이 골목을 찾는다.
그러나 시샘하듯 찬비가 내리고 추위가 닥쳤다.
때아니게 봄눈까지 내린다.
봄꽃은 비가 거두어 간다고 꽃을 곁에 두고 사는 입장에서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홍매화 붉은 우듬지로 함박눈이 나부끼는 풍경은 절경이었다.

홍매화가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마을 골목에는 여러 봄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
홍매화 틈에 흰 매화도 고졸한 멋을 내고, 작은 뜰에는 동백이 붉고, 껑충한 비파나무나 산수유도 철을 만나 피었다.
개나리 같은 영춘화 화분을 내놓은 노인 집 담장이 노랗다.

올해는 글쓰기 수업을 듣는 신입생들과 홍매화 길로 나왔다.
학교 담장을 넘으면 지척에 탐매마을이 있다.
나는 학생들이 자기가 사는 공간을 잘 알았으면 싶어 매년 강의 시간을 할애해 이 지역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순천에는 김승옥, 서정인, 조정래, 정채봉, 서정춘, 곽재구와 같은 문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여순10·19사건’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1948년 이래 70여년간 침묵을 강요당한 지역민들이 역사에 증언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학생들과 마을로 나온 건 처음이다.
탐매마을 골목에 들어선 학생들은 꽃길에 환호하다가도 문득 눈에 밟히는 10·19사건 유적지 표지판에 당황한다.
홍매화 길 초입에 북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운동장은 일명 ‘손가락 총’으로 상징되는 비극의 현장이다.
토벌대는 순천 시민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서로 부역자를 지목하게 하였으며, 지목된 시민들을 학살했다.

서정인 소설 ‘무자년의 가을 사흘’에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작가가 이곳 운동장에서 겪은 참상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김승옥은 이 도시를 무진(霧津)이라고 별칭하고 안개가 명산물이라고 했다.
사실 순천은 안개가 유별난 곳이 아니다.
김승옥은 오랜 침묵 속에서 속내를 선뜻 드러내지 않고 안갯속처럼 산 이곳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이 도시를 어떻게 사유하고 표현할지 궁금하다.

학생들은 꽃길이 상처를 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나는 지붕 낮은 집들을 가리키며 “끔찍한 역사를 겪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 계신다”고 말한다.
골목길에 시간이 일어서고 그만큼 깊어진다.
오래된 거리에서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피할 길이 없다.
순천이 정원 도시로서 이름이 났지만 내심 그 이름 밑에는 비극의 시간이 함께 묻혀 있다는 걸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꽃이 눈비를 맞고 피어났으니 응당 꽃그늘을 걷는 마음가짐도 그러하였으면 싶다.
학생들이 앞서간 골목길을 바라보자니 홍매화도 곱고 아이들도 이쁘다.
아이들이 조심조심 인간의 마을을 걷고 있다.

전성태 교수 소설가·국립순천대교수




뉴스 스크랩을 하면 자유게시판 또는 정치자유게시판에 게시글이 등록됩니다. 스크랩하기 >

0
추천하기 다른의견 0
|
첨부파일
  • newhub_20250213519369.jpg
  • 알림 욕설, 상처 줄 수 있는 악플은 삼가주세요.
<html>
에디터
HTML편집
미리보기
짤방 사진  
△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