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장기화로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하는 페인트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미리 확보한 재고 덕분에 환율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고 있지만, 재고가 소진되면 원가 부담이 본격적으로 수익성에 반영될 전망이다.
18일 페인트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페인트 제조사들은 원·달러 환율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도료 생산에 필수적인 용제, 수지, 안료 등 핵심 원재료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오다 보니 환율 변동이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서다.
지난 3개월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반에서 횡보, 1분기 평균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451원을 기록했다.

업계는 그동안 봄 성수기를 대비해 원재료를 미리 확보해 둔 덕분에 환율 상승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재료 보관 기간이 통상 3개월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부터는 높은 환율이 반영된 원자재가 투입될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료마다 다르지만 창고 수용 능력을 고려하면 3개월 정도를 비축해놓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지만 제품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는 시장 환경이다.
국내 도료 시장은 건설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데, 올해 건설·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올해 공사 물량 감소와 경기 전반의 침체로 인해 도료 수요가 위축되면서 가격 인상 여력이 제한적이다.
건축 경기 부진 속에서 '재도장' 시장이 페인트 업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이마저도 한계를 맞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어떻게든 실적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올해는 본격적으로 고비가 찾아올 것"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환율은 다시 내릴 수 있겠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업계 전반이 양호한 실적을 거둔 만큼 올해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KCC는 선박 시장 호황과 해외 법인 실적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전년(3125억원)보다 51% 오른 471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노루페인트도 건축용·공업용 도료 실적이 모두 선방하면서 2023년 423억원에서 지난해 437억원으로 영업이익이 소폭 올랐다.
삼화페인트만 전년보다 26% 내린 19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부진했다.
이에 페인트 업계는 원재료 비용 상승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원재료 구매처를 해외 직수입 채널 등으로 다각화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이차전지를 신사업으로 점찍은 노루페인트는 최근 배터리용 몰딩제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난연폼 등 6종의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삼화페인트도 전해액 첨가제 관련 기술 특허를 취득하고 배터리 과열을 제어하는 방열·차열 보호 소재를 선보이며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다.
KCC는 환율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유리한 해외 법인 확대에 집중하는 한편, 자율주행 도장로봇, 인공지능(AI) 기반 색상 설계 시스템 개발 등 도료 사업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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