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기 울렸다 금방 꺼졌다 화재경보기 다시 울렸다 주민 여러분 대피하십시오 연기 안 보였다 그래도 일어났다 수조 커서 들 수 없었다 화재경보기 계속 울렸다 수조 안고 두리번거렸다 안에 새우 많았다 주민 여러분 대피하십시오 새우 들고 뛰기 시작했다 긴 복도 아무도 없었다 승강기는 위험합니다 새우 계속 들고 있었다 비상구 안 보였다 창문 창문 보였다 높았다 안 될 것 같았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벨소리 그쳤다 주민 여러분 경보기 오작동입니다 오작동입니다 그런데 새우 다 죽었다 나는 잠 깼다 수조 없었다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비린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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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중한 것,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매사 속을 끓이게 된다.
이따금 이런 꿈도 꾸게 된다.
소중한 것을 안고 황급히 내달리는 꿈. 깨고 나서도 여전히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내 꿈속은 전쟁터였다.
사방에서 포탄이 터지고 나는 소중한 무언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렸는데, 가까스로 몸을 숨긴 뒤 살펴보자 손에는 찢어진 비닐봉지만 덩그러니 쥐어져 있었다.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 빈손의 힘을 풀지 못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지키려 한 걸까.
시 속 ‘나’는? ‘나’는 지금 새우를 기르는 사람이 아니라 새우를 길렀던 사람 같다.
새우만큼이나 작고 여린 무언가, 혹은 누군가. 수조는 이미 없는데,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 같다.
다시 살리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 떨치지 못한 슬픔, 그 슬픔의 “비린내”.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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