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에 쓸 내용은 아닌 거 같아서 다시 정자게로 자진해서 옮겼는데요. 그냥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혼자 기분이라도 삭히려고 끄적거렸네요.

물론 공권력 동원한 압수수색으로 아티스트 강제출연, 지불해야 할 출연료 슈킹, 굳이 비 오는데 강행하면서 자행한 행정력 낭비...

국내 문제만 해도 이미 상당히 많아서 따져보자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모든 것 다 차치하고 내가 만약 여기에 많은 돈을 들여서 잼버리에 참가한 주인공이자 당사자인 각국 애들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생각해 봤을 때 답이 나온다고 보네요.

내 또래 세계인들을 한 자리에 만나는 것도 흔치 않은데 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끝내 야영장을 벗어나 뿔뿔이 흩어져서, 그것도 자국으로 돌아가면 언제든 얼굴 마주할 수 있는 같은 나라 친구들끼리 이동해서 활동하는 것도 모자라 각 나라 아이들이 제각기 다른 걸 경험해 버리고...

한국이라는, 우수한 한류는 물론이고 코로나 모범 대응 국가로 최근 몇 년 간 위상이 크게 상승한 나라인 타국에서 야영하는 기회를 가지고 각 나라 친구들과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며 협동하고 즐겁게 소통하고 추억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그냥 통째로 날려버린 거잖아요.

언론은 무슨 마치 K-POP 공연으로 잼버리 애들이 되게 좋은 시간을 보냈고 한국에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 것처럼 본질을 가려버렸지만, 이건 애초에 예정에도 없는 일정이었어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날씨도 좋지 않은 날에, 급조한 무대에 K-POP을 끼워넣기 식으로 강제로 일정에 우겨넣는 건 비 속에서 공연하며 고생한 아티스트들에게도, 비 속에서 긴 시간을 대기해야 했던 우리나라를 방문한 잼버리 손님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고 폭력인 거죠.

애들 표정이 밝았다고요? 국내 언론은 표정 좋았던 애들만 선택적으로 찍어서 보도했던데, 잼버리 참가한 친구들 중에도 물론 K-POP을 좋아하는 애들이 적지는 않았겠죠. 한국 가수들의 인지도가 높으니 평소 한국 가요를 즐겨왔던 애들도 있을 거라서 이 시간이 행복했던 애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겠지만 참가한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을 거라고 봐요.

잼버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마지막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유종의 미로서 K-POP 공연을 그것도 '오래 전에 기획'해 왔던 걸 선보인 거라면 모를까, 잼버리를 망치고 그걸 만회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예정에도 없던 경기장을 빌리고 가수들을 차출하고, 안전장비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급조 무대 공사로 비 오는 날에 강행한 건 한국 K-POP을 빛낸 처사가 아니라 그저 세계로 뻗어나가는 K-POP을 니들 무능을 가리기 위한 제물로 삼은 거예요.

잼버리 애들도 바보가 아니에요. 한국이 본인들에 최소한의 배려도 해 주지 못했고 정부는 손 놓고 민간이 와서 물이며 간식들이며 제공했던 거 이미 다 알고 있고 한국에 방문한 손님들을 대책도 없이 어떻게 대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 공연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콘텐츠로서 제시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준비 부족으로 홀대한 걸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비 오는 날에 그것도 없는 일정을 우격다짐으로 구겨넣듯이 끼워넣고 진행된 거라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현장에 없었던 우리들보다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고 더 잘 알았을 거예요.

잼버리 애들이 원래 K-POP의 팬이고 우리 가요를 좋아해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내로 방문한 친구들이면 또 몰라요. 아니면 K-POP을 입문하는 자리였다면 또 모르죠. 그런데 적지 않은 인원들은 아마도 K-POP을 즐겨오지 않았던, 또는 즐길 줄 모르던 친구들이었을 텐데 이걸 원래부터 기획하고 예쁘게 잘 꾸미고 철저히 준비해서 아름답게 소개한 게 아니라 비 오는 날에 경기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제로 대기하며 그저 타국의 유명하다는 문화를 보라고 내보인 거나 다를 바 없어서 그런 일정을 소화한 친구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잼버리 친구들에게 이번 한국에서의 시간은 어떤 추억으로 남았을까 문득 생각해 봅니다. 이번 자리는 젊은 외국의 세대들에게 한국을 알릴 좋은 기회였는데,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간 친구들이 먼 미래에 그 기억을 다시 한 번 소환할 권리'까지 앗아갔어요.

저는 이번 일로 K-POP을 더 좋은 문화 콘텐츠로 널리 알리는 데에도 실패했다고 볼 뿐만 아니라, 덥고 준비 안 된 미숙한 최악의 참사를 경험한 이 불쾌했던 기억을 은연 중에 가지고 뿔뿔이 흩어져서 제각기 서로 다른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온 아이들, 이 애들이 앞으로 커서 한류로 이어갈 그 관광 문화 산업에까지 악영향을 끼친 거라고 보네요. 말 그대로 잠재적인 고객마저도 잃은 겁니다.

그나마 무정부상태인 우리나라에서 애들에게 하나라도 좋은 기억을 선사해 주려고 백방으로 뛰고 노력한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네요. 뭔가 가슴이 아프고 너무 속상하고 그러네요.

나라를 운영하는 자리에 이기적이고 무능한 집단을 잘못된 판단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잘못 앉혀놓으면,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과 세계인들이 봅니다.

그리고 언론 니들도 공범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