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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농장 소년‥'실리콘 하트랜드'를 꿈꾸다[애플 쇼크웨이브]⑮ 9
분류: 일반
이름: 뽐뿌뉴스


등록일: 2023-05-27 12:48
조회수: 984





편집자주[애플 쇼크웨이브]는 애플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며 벌어진 격변의 현장을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애플이 웬 반도체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에서부터 시작된 오랜 노력 끝에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사용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설계해 냈습니다.
PC 시대에 인텔이 있었다면, 애플은 모바일 시대 반도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와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 설비 투자가 이뤄지는 지금, 애플 실리콘이 불러온 반도체 시장의 격변과 전망을 꼼꼼히 살펴 독자 여러분의 혜안을 넓혀 드리겠습니다.
애플 쇼크웨이브는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40회 이상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합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가 넘친다.
행사 중에 푸시업을 하고 피티 체조하는 모습을 방송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에너지와 열정이 반도체 개발에 큰 힘이 됐음은 분명하다.


10대에 인텔에 입사해 40대 초반에 초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된 것도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래의 인텔 CEO'라는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그러나 겔싱어는 자신을 키워준 '실리콘 밸리의 아버지'들이 떠난 인텔에서 첫 좌절을 겪는다.
CEO를 꿈꾸던 열정 넘치던 엔지니어는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떠났다.
겔싱어의 실패는 단순하게 볼 사안이 아니다.
당시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과 반도체 종주국 미국의 추락이 시작된 결정적 장면이기도 하다.


겔싱어가 다시 인텔로 돌아온 2021년, 비로소 미국은 반도체 리쇼어링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한 기업의 인사가 어떻게 미국 반도체의 추락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자.


'편집광' 그로브가 만든 후계 경쟁의 승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9월. 인텔은 돌연 경영진의 변화와 사업부문 병합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인텔을 떠난 이는 겔싱어였다.
겔싱어가 5년간의 CTO 활동 후 이끌었던 개인용컴퓨터(PC)와 서버용 CPU 부문은 모바일 칩 부문과 통합됐다.


인텔 최고경영진의 변화를 암시하는 중요한 결정이었다.
겔싱어가 스토리지 장비 업체인 EMC로 떠난 반면 션 멀로니(Sean Maloney)는 PC 서버 모바일 부문을 모두 관장하는 수석 부사장이 됐다.


멀로니와 겔싱어는 차기 인텔 CEO 자리를 두고 경쟁했지만 멀로니가 승자인 것이 당시 인사로 확인됐다.
멀로니가 차기 CEO라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펜실베이니아주 아미시 농장 출신인 겔싱어는 영국 출신 멀로니와 차기 인텔 CEO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인텔은 창업자 시대가 지난 후 차기 경영자 육성을 위한 경쟁을 부추겼다.
앤디 그로브 전 회장은 자신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겔싱어를 선택해 사무실로 전화해 불러들였다.
이후 직접 다그치고 격려하며 겔싱어를 이끌었다.
실리콘밸리의 아버지에게 배움을 받은 겔싱어는 시골 출신 촌뜨기에서 인텔 최고의 기술자로 성장했다.
겔싱어는 지금도 자신의 멘토로 그로브를 꼽는다.


그로브는 흔들리는 겔싱어를 다잡기도 했다.
그로브는 스탠포드 대학 박사과정을 다니기 위해 인텔을 떠나려던 겔싱어에게 이렇게 말하고 486 CPU 개발을 맡겼다.


"너는 그 곳에서 비행 시뮬레이터를 배우겠지만 이곳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다.
"

멀로니 역시 인텔 CEO가 되기 위한 충분한 자질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멀로니도 인텔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겔싱어 보다 3년 늦은 1982년 인텔에 입사했다.
그는 괴팍하면서도 후배를 강하게 질타하며 키우는 경영자로 유명세를 타던 그로브를 지근거리에서 3년이나 보좌했다.
멀로니가 그로브에게서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당했을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멀로니는 겔싱어와는 출신 배경도 전혀 달랐다.
영국 출신이다.
럭비, 수영, 스키를 즐기는 젊은이는 반도체를 위해 대서양을 건너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마스터 커뮤니케이터' '해결사'라는 멀로니의 별명이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멀로니는 영업 및 마케팅 그룹의 총책임자, 최고 영업 및 마케팅 책임자라는 자리를 거치면서 차곡차곡 내일의 CEO로 훈련받았다.


멀로니와 겔싱어는 인텔의 사업 방향을 두고 다른 입장에 섰던 것으로 보인다.
멀로니는 인텔이 앞장섰던 와이맥스(Wimax) 통신망 사업을 주도했다.
겔싱어는 와이맥스 사업 투자에 부정적이었다.
더 많은 자금을 자신이 주도했던 CPU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 반도체 업체의 CEO를 향한 두 사람의 경쟁 속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등장했다.
폴 오텔리니 당시 CEO다.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첫 인텔 CEO인 오텔리니는 겔싱어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오텔리니가 CEO자리를 차지한 후 겔싱어는 다시 서버와 PC용 CPU 개발을 맡았다.
AMD의 추격에 인텔이 흔들리던 때다.
겔싱어는 지금은 일반화된 멀티코어 CPU와 '틱톡'(공정 개선과 코어 개선을 해마다 번갈아 가며 추진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겔싱어는 인텔에서 사직한 후 오텔리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오텔리니의 마음은 다른이에게로 향했다.
멀로니였다.


멀로니는 울트라모바일PC(UMPC)를 주도하는 등 인텔 내에서는 모바일 분야쪽에 특화한 인물이었다.
인텔이 모바일 시대에 멀로니를 선택한 것은 이상한 선택이라 할 수 없었다.
중국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아시아에서 사업을 주도한 것도 멀로니였다.
멀로니의 부인은 중국계다.
당연히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급성장하는 중국 사업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었다.


멀로니의 부상, CEO와의 갈등 속에 겔싱어는 30년간의 열정을 쏟아온 인텔을 떠났다.
겔싱어는 30년간 살아온 실리콘밸리가 아닌 미 대륙의 정 반대편인 보스턴으로 향했다.
그것도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데이터 저장 장치를 제조하는 EMC라는 회사였다.
EMC는 겔싱어를 CEO로 훈련시켰다.
겔싱어는 경영수업을 받았고 재무제표도 보게 됐다.
3년 후 겔싱어는 가상화 전문업체인 VMWARE의 CEO로 실리콘밸리에 복귀했다.
세로운 대세가 된 클라우드와 가상화 소프트웨어로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올라선 회사에서 겔싱어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훌륭한 CEO로 거듭났다.


차기 인텔 CEO 후보의 뇌줄증‥반도체 판을 바꾸다

문제는 인텔에서 발생했다.
겔싱어가 인텔을 떠난 1년후 멀로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정상적인 업무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극적으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해 업무에 복귀했지만 CEO를 맡을 수는 없었다.
CEO 후보였던 겔싱어는 이미 회사에 없었다.
다른 이를 물색해야 했지만 멀로니와 겔싱어 만큼 그로브에게 잘 훈련된 CEO 후보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오텔리니는 예정보다 빠른 2013년, 은퇴를 결정하면서 당시 최고운영책임자이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많은 이들이 이를 인텔 몰락의 시발점으로 지목한다.
연구개발비 삭감, 인력 감축은 크르자니크의 전매특허였다.


아무리 부진해도 기본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이익을 내는 인텔을 물려받은 CEO는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는 비용 절감이 우선이었다.
앤디 그로브가 씨앗을 뿌린 극자외선(EUV) 장비 도입을 포기하고 무어의 법칙이 죽었다는 발표까지 했다.
더이상 미세 공정에 대한 투자가 없는 인텔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TSMC와 삼성은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며 미세 공정에서 인텔을 추월했다.
인텔의 아류로 여겨지던 AMD는 "남자는 팹"이라는 창업자의 발언을 뒤엎고 팹리스로 전환해 TSMC와 함께 인텔 앞에 서버렸다.
주가는 올랐지만 속빈 강정이었다.


올바른 판단을 하던 사내 전문가들도 질려버렸다.
대표적인 예가 인텔에서 통신용 모뎀 부문을 담당했던 에이샤 에번스(Aicha Evans)다.
그는 인텔이 독일 인피니언의 모뎀 부문을 인수한 후 TSMC가 맡던 칩 제조를 인텔로 전환하는 임무를 맡았다.
고성능 CPU에 특화된 인텔 팹이 ARM 설계에 특화한 TSMC에 비해 부족하다는 의견은 크르자니크에게 묵살됐다.
오히려 인텔의 제조 능력을 무시했다는 육두문자가 섞인 조롱이 돌아왔다.


2018년 크르자니크가 부하직원과 사내 연애를 한 사실이 드러나며 6년간 지켜온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인텔 이사회가 크르자니크의 경영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스캔들을 빌미로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또다시 3년간은 밥 스완이 무너져 가는 인텔을 떠 맡았지만 추락의 가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인텔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애플마저 인텔과 이별을 고한 후 2021년 인텔 이사회는 단 한사람을 떠 올렸다.
12년전 등 내보냈던 겔싱어였다.
인텔 CEO라는 꿈을 간직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농장 소년 겔싱어는 꿈을 찾아 돌아왔다.


겔싱어는 동향 출신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뜻을 같이 했다.
실리콘 밸리가 아니라 낙후한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새로운 반도체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만들어 졌다.
미국, 그것도 실리콘 밸리가 있는 서부가 아니라 중부에서 미국에서 사용될 최신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겔싱어는 최근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론대학(공과대학으로 유명하다) 졸업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츠버그는 겔싱어의 고향 펜실베이니아 주에 속하지만 역시나 오대호 주변 러스트 벨트 지역이다.


"우리는 지금 실리콘 하트랜드(silicon heartland)를 만들고 있다.
"

의미 심장한 표현이다.
미국의 중흥을 이끈 공업지대에서 낙후된 슬럼으로 변한 도시들을 반도체 중심지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실리콘 하트랜드의 목표는 인텔 칩 생산이 아니다.
미국에서 설계된 최첨단 칩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의 생산 거점. 애플 아이폰에 들어갈 칩을 만드는 것. 겔싱어와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다.


<!-- BYLINE_DATA:cinqange|백종민|cinqange@asiae.co.kr|기자 -->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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