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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3
분류: 세계사
이름: 제갈량패


등록일: 2021-11-21 22:58
조회수: 309 / 추천수: 0





링컨의 정치업적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 링컨은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4월 섬터 요새에 대한 남군의 공격으로 마침내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중 그는 의회에 대하여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요청하고, 독재적 권한을 행사하여 인신보호령장의 정지, 언론집회의 자유의 제한을 강행, 반대당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여러 세력을 조정하여, 북부의 강경론자들을 누르면서 노예해방을 점진적으로 단행하는 것이었다. 전황은 처음에는 북군에게 불리하였으나, 1862년 9월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일거에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하였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다.

 

노예해방선언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노예해방에 관하여 대통령 A.링컨이 발표한 선언. 남북전쟁 중 링컨은 1862년 9월의 안티텀 전투에서 전황이 북부에 유리해지자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여러 주가 1863년 1월 1일까지 연방에 복귀하지 않으면 노예해방을 선언하겠다는 경고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선언이 정식으로 포고되었다. 내용은, ① 반란상태에 있는 여러 주의 노예를 전부 해방하며, ② 해방된 흑인은 폭력을 삼가고 적절한 임금으로 충실히 일할 것, ③ 흑인에게 연방 군대에 참가할 기회를 줄 것 등을 규정하였다. 이 선언은 남북전쟁에서의 전략적 의의도 가지는데, 남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남부 여러 주의 연방 조기복귀를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노예해방은 전쟁 뒤 합중국 수정헌법 제13∼15조의 성립으로 폐지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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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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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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